▲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 5년간 경상흑자 500조원(세계 3위), 30대 재벌 사내유보금 800조원인 나라에서 최저시급을 1천60원 올렸다고 나라가 망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최저임금이 결정타 나라 떠나는 기업들”(조선일보), “최저임금 충격, 한국경제가 견뎌낼 수 있나”(중앙일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시 외식업 종사자 13% 실직"(한국경제)

익히 알려져 있듯 우리나라는 여성의 저임금, 비정규직의 저임금, 청년의 저임금, 중소기업의 저임금이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나라다. 그리고 저임금 계층 고착화가 장기적 경제성장에 부정적이란 사실은 좌·우파를 떠나 대부분이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익숙하고 역사적인 제도, 법정최저임금이 오르자 갑자기 보수언론과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들고일어나 우리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며 정부와 노동조합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는 가장 대표적 논리는 인상폭이 ‘적정선’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임금인상률이 높으면 기업 이윤은 감소하고, 따라서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용을 줄인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정민 서울대 교수는 “최저임금이 2006년 이후 8년간 고용에 미친 영향을 분석(…) 최저임금이 10% 오르면 고용은 주당 44시간 일자리수 기준으로 1.4% 감소”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몇 가지 점에서 실증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노동생산성과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생산성 증가에 한참 뒤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소득까지 적절하게 조정한 노동소득분배율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이 수치가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은 곧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임금인상률이 낮았다는 방증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지체된 임금에 대한 보상이다.

이 교수처럼 최저임금과 고용의 상관관계를 특수한 시기에 맞춰 추정하는 것도 문제다. 이 교수는 2007~2009년 세계대공황이 있었던 시기를 포함해 최저임금 영향을 평가했다. 그런데 이 시기 대부분의 경제지표는 경제위기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세계 자본주의가 망하냐 마느냐를 다투던 시기에 최저임금 몇 푼 오르고 내리는 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 경제를 포함해 세계 경제는 이 위기의 영향을 상당히 오랫동안 받았다. 경제위기로 인한 수많은 거시경제 변수를 제거하고 최저임금과 고용의 상관관계를 측정했다는 것은 신뢰하기 힘든 것이다. 예로 최근 시애틀의 2016년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두고도 경기 변수가 미친 영향 때문에 갑론을박이 많다.

최저임금 대신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해야 한다는 비판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그다지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정부가 보조하는 근로장려세제는 그 시행과 재원에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다. 사업주가 의도적으로 임금을 낮춰 정부 보조를 받는 것도 부작용 중 하나다. 세입을 조금이라도 늘리려 하면 세금 폭탄 운운하는 보수언론과 경제학자들이 최저임금 대신 근로장려세제를 운운하는 것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미국에서 최초로 도입된 이 제도가 신자유주의적 복지 개혁의 일환이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

적정선의 세계적 기준을 이야기하며 이번 최저임금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것도 다소 황당한 것이다. 왜냐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자체가 이미 세계적 표준과 한참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노동시장은 극단적 격차를 특징으로 한다. 또한 비정규직·청소년 등에 대한 제도의 과소 보호 역시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의 세계적 표준을 떠들 형편이 아니다.

임금을 중심에 두고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경제학에서 근거가 없다는 식의 주장도 종종 나온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을 끈 경제학 이론들은 대부분 임금 소득의 불평등을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경제학자 중 한 명인 로버트 고든은 기술혁신의 곤란함으로 세계 경제가 장기 저성장에 빠진 가운데, 그나마 가능한 경제성장도 갉아먹는 원인으로 불평등을 첫 번째로 뽑는다. 저임금으로 인해 인구의 많은 수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교육에 대한 참여 욕구도 감소한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경제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세계경제사>의 저자이자 세계적 경제사 석학인 로버트 C. 앨런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발생한 핵심 이유로 영국이 상대적으로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고임금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기업가들이 고임금에 대응하기 위해 자본집약적인 기술 개발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 증기기관과 기계설비가 개발됐어도 다른 나라는 영국보다 도입이 늦었는데, 노동자의 저임금을 이용하는 것이 비싼 기계보다 낫기 때문이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세계 경제가 기술적·제도적 이유로 지대 추구적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를 제한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시장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하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한국 경제에 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한국 경제의 큰 일은 오늘날의 헬조선을 만든 경제학이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고, 최저임금 노동자의 그 얇은 월급봉투를 탓하는 부조리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