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돌규 서대문 인문사회과학서점 레드북스 지킴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는 현장에서,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역사를 찾아 주자고 ‘노동자역사 한내’가 만들어졌죠. 영등포 작은 빌딩 한 귀퉁이를 빌려 열었던 사무실. 10년 전, 아주 추운 겨울 데이콤 해고자 이승원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승원 위원장은 노동운동에서 ‘투사’로 널리 알려져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데이콤노조 위원장과 공공연맹 사무처장,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숱한 투쟁 현장에서 앞장섰던 사람. 1996-1997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저지를 위해 온 나라 노동조합의 총파업 현장, 그리고 국민 기업 데이콤이 LG에 합병되는 것을 막기 위한 2000년 80일간의 파업, 2003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들의 싸움과 열사 정국을 이끌어 간 공공연맹 위원장 시절, 그리고 복직투쟁하던 긴 시간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투사였습니다. 그러다가 복직 후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러고서 노동자들의 역사를 기록·보존하는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을 맡았더랬죠.

당신은 노동운동 사료를 모으고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쓸쓸한 집회 현장, 함께 유인물·신문·피켓을 수습했지요. 역사라는 것이 바람처럼, 봄꽃처럼 얼마나 금세 사라지는 것인지 우린 알았고 그 전에 갈무리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사무실엔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만든 거대한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니 우리가 이런 것까지 모아야 하나’ 싶었을 때 이승원 위원장은 제게 그렇게 말했죠. “이게 역사야!”

우리 노동자들의 역사는, 하나하나 봤을 때 얼마나 가난한지요. 우리의 서사는 얼마나 가난한지요. 하지만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야 30년·100년·200년의 시간이, 그 거대한 발걸음이 비로소 보이겠지요. 당신은, 이승원 위원장은 그걸 알았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도 남는 산천이 우리 대신 외쳐 주는 뜨거운 함성, 그걸 만들고자 했던 것이겠죠.

노동자역사 한내 10년 동안의 성취는 모두 당신의 수고에 기대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조합사·노동운동사·투쟁 백서가 써졌습니다. 엄청난 양의 노동운동 자료가 수집됐고, 인터넷으로 볼 수 있도록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스캔을 거친 자료들을 보관하는 자료관을 별도로 크게 지었습니다. 산별노조나 개별 지부와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노동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 하셨고 노동자역사 한내는 그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당신이 가고 없는 세상에서 남은 사람들은 다 이렇게 읊조리더군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당신의 빈자리가 광장처럼 넓은데, 거기 서서 우린 허청댑니다.

이승원 위원장, 당신이 시간을 좀 주신다면 우리 산 자들은 따를 겁니다. 노동자역사는, 실제로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길, 동시에 그 역사를 갈무리하고 모두는 일, 둘 다일 겁니다. 언제나 세상이 필요한 곳에 있고자 했던 당신처럼 말입니다. 일본의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지요.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미야자와 겐지)

잘 가세요. 이승원 위원장님 당신이 너무 고독하지 않았기를. 우린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황홀하게 기꺼웠기에. 당신과 함께, 노동자역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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