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원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얼마 전 황당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에서 시설관리직으로 5년 넘게 계속 근무했는데도 계약만료로 해고됐다는 것이다. 학교가 내세우는 이유도 어이없었다. 원래 그 자리는 공무원 자리였는데 미발령 상태에서 결원을 대체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임시로 채용했으니, 아무리 오래 일했어도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간제법 어디에도 공무원 결원이라는 사정이 무기계약 전환의 예외 사유로 규정된 바 없다.

한마디로 학교는 정규직인 공무원 자리가 별도로 존재하고 그 자리에서 아무리 오랜 기간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공무원이 될 수 없듯,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이것이 바로 어쩌면 근로기준법이 말하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의 전형적인 모습 아닐까?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노동위원회 심문회의를 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교육청 관계자의 하소연을 듣곤 한다. 그렇게 억울하시면 임용고시를 보고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시라고. 교육청이 교사의 이익집단이 아님에도 너무나 교사 편에서 이야기를 한다 싶어 심문회의 내내 개운치 않다. 아마도 같은 교사신분으로 후배들의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얄팍한 심리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학교에서 교사와 동일·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들이 고용안정을 확보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계속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영어회화 전문강사 직종도 같은 입장이다. 최근 고등법원에서까지 무기계약직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났음에도 교육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교육청이 이행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고 당사자에게 당부한 바 있다. 안타깝다.

어쩌면 채용절차는 사용자가 만들어 낸 형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수능점수가 학생들의 잠재적 능력을 대변하지 못하듯 채용절차가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수년간 정규직 자리에서 그 능력을 발휘해 왔다면 더 이상 채용절차를 문제 삼는 것은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정규직 자리에서 수년간 온몸으로 고생한 비정규직을 몰아낸다는 논리가 가능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신분사회라는 점을 가감 없이 가르칠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전교조가 한목소리를 내길 기대해 본다. 편 가르기를 넘어 노동의 가치를 말해야 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토록 신분을 문제 삼는 것일까. 들어오는 입구가 여러 개 존재하듯, 적어도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그 노동의 가치는 오롯이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채용절차는 수단에 불과하듯,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한 사람의 노동의 가치를 폄하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는 데 어떠한 편견도 존재하지 않는지. 사회적 신분이 혹은 채용절차가 달랐다는 이유로 편 가르기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사용자가 내세우는 직무급이 아닌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방향으로 수렴되기를 바라 본다.

원래부터 누구를 위한 자리가 존재한다거나 누구를 대체해 노동을 제공한다는 것이 성립할 수 없듯 오늘 땡볕 아래서 같이 고생하는 내 동료의 노동인권이 존중받는 것이 곧 우리 모두가 꿈꾸는 노동존중 사회로 가는 길임을 당당히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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