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기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삶)

노동자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손해배상·가압류 금지, 근로시간단축, 최저임금 인상, 근로감독 강화, 반노동적 사법행정 개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비정규직 사용 제한, 근로자 개념 확대 등 다양한 노동의제들은 법률을 통해서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다. 물론 시행령 개정, 행정지침 변경, 행정력 강화 등 정부 의지로 해결될 수 있는 과제들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법률의 제한 범위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정치 영역에서 풀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를 위한 법률의 제·개정 속도는 너무나 느리다. 오히려 개악되기도 한다. 국회의 구성이 반노동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총선으로 선출된 20대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은 123명,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은 122명, 국민의당은 38명, 정의당은 6명, 무소속은 11명이다. 노동관련 법률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와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법안심사소위회의 경우 관례적으로 만장일치제를 시행하고 있다. 결국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법률은 상임위 통과조차 어렵다.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직접 상정되는 안건 신속처리제도(패스트트랙) 대상 법률이 되려면 180석이 필요한데, 법률 통과에 협조 가능성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국민의당·무소속 일부를 모두 합쳐도 170석에 불과해서 이를 활용할 수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국회 구성이 국민 의사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 즉 노동자를 위한 법률이 통과되지 않거나 개악되는 것이 국민의 의사가 아닌데도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정당지지율과 정당 의석비율이 현격하게 차이 나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이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 경우 새누리당은 33%의 정당지지율로 40%의 의석(122석)을 차지한 반면에 정의당은 7%의 정당지지율을 얻었지만 2%의 의석(6석)에 만족해야만 했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47석으로 그 수가 매우 적고, 연동형이 아닌 병립형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국회 구성의 불비례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민의를 반영하는 국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국회 구성의 비례성을 높이고, 지역 대표성도 반영하기 위해 한국에 가장 적합한 선거제도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는 정당지지율에 따라 정당별 총 의석수를 우선 배분한 후,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을 제외한 수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현재 선거제도 방식은 정당지지율이 의석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99% 정당지지율에 따라 의석수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 실시했다면, 새누리당은 104석, 국민의당은 83석, 더불어민주당은 79석, 정의당은 23석, 무소속은 11석이 됐을 것이다. 더 많은 노동전문가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고, 노동의제에 우호적인 정당의 의석수가 180석을 넘게 돼 법률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선결조건도 있다. 우선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해야 한다. 의원정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확대하고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을 1 대 1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즉 의원정수를 500명으로 확대하고 비례대표를 250석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만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가 법률과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실효성도 확보될 수 있다. 또한 공천제도 민주화를 법률로 규정하고 국회의원 세비와 보좌관수 축소, 특혜·특권 축소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을 위해 투쟁도 필요하고, 법률적 다툼도 필요하고, 정부의 변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매번 좌절을 느끼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느꼈던 건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 선거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는 정치 그 자체다. 국회의 구성이 바뀌면 정치가 바뀐다. 정치가 바뀌면 우리의 삶이 바뀐다. 이것이 선거제도가 바뀌면 노동자의 삶이 바뀌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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