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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져야 한다’는 노동운동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저들이 말한 지는 꽤 오래고, 저들에 맞서는 이들이 말하기 시작한 지도 좀 됐다.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뭐라 변명해도 노조 조직률 10%는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위한 투쟁에 이 나라 노동운동이 주력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을 조직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저성장·불경기가 계속되는데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수준인 장시간 노동, 과로사·과로자살에 중대재해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재해, 높은 청년실업률에 고령자의 높은 빈곤율, 낮은 사회보장률 등은 이 나라 노동운동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달라져야 한다는 말은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운동이 맞서야 하는 사용자 자본과 권력이 해 왔던 것이고, 오늘은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빈번히 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 중에는 노조 조직형태 등에 관한 것도 포함해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대기업노조·산별노조·기업지부·기업지회 등이 이와 관련해 떠오른다.

2. 1990년 말, 외환위기 직후 권력의 지원 아래 사용자 자본에 의한 구조조정이 몰아쳤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경제 살리기는 기업 살리기 위한 기업 구조조정으로 대규모로 전개됐다. 외주화·파견근로 등 비정규직 사용을 본격화하던 그때, 우리 노동운동은 초기업단위로 노동자를 조직해 활동할 수 있는 노조 조직형태인 산별노조체제로의 전환을 대응전략으로 추진했다. 1998년 초 통합 출범했던 금속연맹은 산하 기업노조들의 조직형태변경 방침을 전해 금속노조로의 전환사업에 주력했다. 산별노조만이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조직할 수 있고 그들을 포함한 노동자를 위한 노조체제라고 교육하고 선전했다. 지난 촛불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선전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당시 금속연맹 사무차장으로 연맹의 산별노조 전환방침을 마련하고 그 결의를 추진하는 데 앞장섰다. 그 무렵, 즉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는 산별노조는 그야말로 이 나라 노동조합의 미래고, 노동운동의 목표였다. 그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산별노조를 밀어붙였다. 금속연맹 법률국장·법률원장이던 나는 산별전환 방법과 산별 규약안에 관한 법적 검토를 했다. 그리고 민주노총 사업장을 중심으로 산별노조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금속에서는 2006년 현대차·기아차를 비롯한 대공장을 중심으로 조직형태변경이 결의되면서 조선업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산별노조로 전환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3. 2006년 대공장의 산별전환은 2003년부터 추진돼 온 노무현 정권이 추진해 온 노사관계 선진화방안, 일명 노사관계 로드맵에 따른 노동법 개정을 앞둔 상황에서 그에 따른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노조법 개정에 대한 기업노조의 공포도 크게 한몫했다. 이 무렵에는 기업단위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사용자에 의한 어용노조가 만들어지고 기존 노조는 약화될 수 있으니 산별노조로 전환해서 강력한 조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전임자급여 지급이 금지되면 기업노조는 존폐 위기에 몰리는 것이니 산별노조로 전환해서 노조조합비로 운영해야 한다고 수도 없이 산하 노조, 그 조합원들에게 교육하고 선전했다. 이렇게 해서 2001년 2월 초에 출범해서 한동안 조합원 3만명을 넘지 못하던 금속노조가 2007년에 15만명 규모로 명실상부 금속노조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그런데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노조법 시행은 산별노조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2010년 1월1일 개정 노조법은 산별노조의 조직과 활동을 가로막았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도입으로 기업노조가 다수노조인 사업장에서 산별노조가 교섭권을 행사하는 걸 가로막았다. 이를 통해 사용자 자본은 어용노조·기업노조를 통해 산별노조를 차단할 수 있게 됐다.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전까지는 사실 노조조직화에서 산별노조는 법적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개정 전 노조법은 기업노조의 복수노조 설립을 금지하고 기업노조가 아닌 초기업단위노조 조직은 금지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산별노조로 조직하는 것은 법적 제한이 없이 보장되고, 단지 사용자가 부당하게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산별노조가 법원에 단체교섭응낙 가처분 소송 등을 해야 한다는 것이 번거로울 뿐이었다. 그랬던 것인데 개정 노조법 시행과 함께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로 인해서 산별노조는 위와 같이 타격을 입게 됐다.

산별노조를 통한 중소영세·사내하청·비정규직의 조직화는 기대한 것만큼 되지 않았다. 산별노조 규약은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 모두를 조직대상으로 하고 조합원의 조직편제에 관해 정하고 있었다. 그러니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그들을 기업지부 등에 조직편제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공장 등 기업지부 사업장 조직들의 규정은 과거 기업노조와 다름없이 해당 사업장 노동자로 가입 범위를 한정하고 사업장 단체협약에서 비정규직 등의 가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분명히 산별노조 규약에 반하는 지부 규약인 것이므로 산별노조 규약에서 명시한 것처럼 규약에 반해서 무효라고 선언하고서 비정규직 조합원을 조직편제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규약을 무시하는 현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산별노조 규약은 분명히 비정규직 등의 가입에 제한이 없는데 지부·지회 등에서는 규정 개정 등 별도의 가입을 위한 총회 등의 결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운영됐다. 예를 들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몇 차례 이를 위한 조합원총회를 했지만 번번히 부결됐던 것이고, 기아차지부는 총회결의를 통해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가 얼마 전에는 조합원총회를 통해 분리해서 크게 논란이 됐다. 이렇게 무엇이든 비정규직 조합원의 의사보다 기존 지부 조합원의 의사에 따라 비정규직 조직화 여부가 결정됐던 것이다.

개정 노조법에 의해 시행되고 도입된 전임자급여 지급금지 및 근로시간면제 제도는 기업단위에서 노조전임자의 급여지급을 제한한 것이지만, 그것은 기업노조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초 타격 대상으로 삼았던 기아차·현대차 등 노조전임자가 대규모로 활동하는 사업장의 경우에도 우회적인 방법으로 그 전임자 대부분을 유지함으로써 그 예봉을 피해 갔다. 오히려 그러한 방법을 취하기 어려웠던 산별노조 전임자의 경우 근로시간면제 대상에서 제외돼 산별노조의 재정부담이 됐다.

이상을 통해서 보면,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 관한 개정 노조법의 시행은 이 나라 노동운동이 산별노조로 달라져야 한다고 당연히 내세울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 나라 노동운동은 달라져야 한다고, 비정규직·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까지 함께하는 노동운동으로 산별노조를 말한다. 산별노조 규약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3. 그런데 여기서 나는 무엇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대기업지부가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가입을 허용하면 획기적으로 비정규직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그런 거라면 대기업 조합원들의 연대 정신이 고양돼 총회에서 결의해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묻고 싶다. 대기업지부 조합원의 의사에 따라 비정규직 조직화 여부를 추진하기 위해서 우리는 산별노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그토록 노래했던 것인가. 그런 것이라면 굳이 산별노조로 우회할 일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산별노조들은 규약에서 이미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도록 열려 있고, 산별노조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비정규직 조직화는 계속돼 왔다. 현대차지부 조합원일 수 없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오랜 기간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정규직 전환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불법파견 투쟁에 어느 노조 조합원들보다 열심히 했고, 그것으로 현대차에서 사내하청을 철폐하고 정규직 전환을 쟁취할 수 있었다. 오늘 이 나라 노동운동이 달라져야 한다고 하는 말들은 한없이 가볍다. 그것으로 과연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운동이 제대로 달려질 것인지 의심스럽다. 20년 해 왔던 노조운동의 방침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4.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대상은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촛불집회를 주도적으로 참여해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켰던 바로 이 나라 노동운동, 노동자들이다. 촛불집회에서 민주노총 등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제가 가진 역량을 모두 발휘해서 박근혜의 퇴진 투쟁을 훌륭히 전개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투쟁의 목표만을 두고서 본다면 말이다. 달라져야 할 노동운동은 아니었다. 그런데 촛불대선을 지나오면서 더는 새 세상을 위한 변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나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저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개혁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지난 19일 문재인 정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마련한 국정운영계획을 발표했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와 노동기본권에 관한 사항들이 ‘5대 국정 목표, 20대 국정 전략, 100대 국정과제’에서 어떤 내용으로 포함돼 있는지를 살피기 바쁘다. 겨우내 촛불집회에서 앞장서 적폐 청산의 과제를 외치던 이 나라 노동운동의 모습이 아니다. 더는 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운동은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넘어, 노동자가 스스로 세상의 주인으로 서기 위해서는.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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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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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삶 2017-07-25 12:27:32

    국민을 우롱하고, 착취하는 기득권을 위한 정치제도가, 현재의 정치 제도라면, 자식을 낳지 않는것으로 `소극적인 저항`을 하는것이 아니라, 기득권 그 자체를 부수는 혁명이 필요하다.   삭제

    • 인간의삶 2017-07-25 12:26:16

      근로시간 특례 자체가 폐지되어야 한다. 국민이 일하는것에 대해,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괴물 법`은 사라져야 한다. `국회의원`이 `기업`에게 준 `국민 무제한 이용권`을 폐지 해야한다.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지 않고, 인간들에게 내던질 거라면, 왜 ? 국가가 필요한가? 국가란, 인간과 인간사이의 한계와 룰을 정하는 시스템인데. 국민의 일자리중 몇%는 시스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면, 그 국민의 몇%에게는 정부가 필요없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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