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묵 집배노조 위원장

노동자 자유이용권. 근로기준법이 정한 특례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압축해 표현하는 신조어다. 통신·의료·광고·운수 등 26개 업종 노동자는 근로시간 특례제도 적용을 받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집배원 자살이 잇따르고, 명문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해 잘나가던 직원이 목숨을 끊고, 버스운전 노동자의 졸음운전으로 대형사고가 발생하면서 과로사와 과로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회는 특례업종을 줄이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특례업종 가운데 일부를 줄이는 데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노동계는 특례업종 폐지를 요구한다. 특례업종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직접 <매일노동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7월6일 오전 안양우체국 앞에서 한 집배원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서 한 장 없던 그의 마음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20년 넘게 다니던 우체국 앞으로 찾아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데에는 얼마나 큰 한이 서려 있을까 생각하며 모든 집배원들은 비통함에 잠겼다. 분신 사건을 계기로 집배원들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었고, 많은 국민도 공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집단의 분노는 얼마 전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철폐 및 과로사·자살방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집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에서는 매일 세 차례 1인 시위를 하며 국민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반복되는 우체국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대표적인 과로 사업장이다. 올해 5월 집배노동자의 과로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고를 <매일노동뉴스>에 보낸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사이 2명이 과로사하거나 과로자살을 했다. 이로써 올해 사망한 우정노동자만 12명이다. 그중 집배원이 10명이며 계리원이 2명이다. 집배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천888시간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장시간 노동 내내 고강도의 일을 하는 것도 문제다.

올해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은 집배원 근무강도를 조사했다. 중간보고자료를 보면 집배원의 평균 심박수는 110으로 근무시간 내내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심장 혈관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집배원들의 하루 평균 도보수는 2만3천355보로 나타났다. 최대 3만9천541걸음을 걷기도 했다. 이런 장시간·고강도 노동이 집배원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전국집배노조는 지난해 4월 설립한 이후 꾸준히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지적해 왔다. 지난 2월15일에는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3개월이 지나 노동부는 “규정상 특별근로감독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답변했다. 실태조사 역시 부실했다. 집배원 과로사는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조사지역은 우정사업본부가 세종시에 있다는 등의 이유로 대전지방고용노동청 관할 4개 우체국에만 진행했다. 그 3개월 사이 우리는 동료 5명을 과로와 자살로 잃어야만 했다.

실태조사 결과는 허망했다. 우편업이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에 해당하기 때문에 24시간 365일 일을 시켜도 위법이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사람을 죽을 때까지 일을 시켜도 어떠한 법 위반 사항도 없는 것이다. 분노가 치밀었다.

노동부가 최종적으로 내놓은 입장은 집배원의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고 한 사람당 평균 2.7일밖에 쓰지 못하는 연가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 전부였다.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고만 했는데 과연 우정사업본부가 이를 지킬지도 의문이다.

통계청의 2013 전국사업체조사(2013)에 따르면 전체 사업체에서 특례업종에 해당하는 사업체 비율이 60.6%나 된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 비중도 전체 임금노동자의 42.8%가량이다. 특례업종이 특별한 업종이 아니라 아주 보편적인 업종이고, 임금노동자 10명 중 4명 이상이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집배원을 포함한 한국 사회 전반의 과로사가 문제로 대두되는 만큼 근기법 59조를 폐기하는 시점은 더 빨리, 그리고 폭넓게 당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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