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대한민국 주류 현대사가 외면하는 역사가 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 6월 항쟁의 뒤를 이어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공돌이 공순이로 불린 노동자들이 들불처럼 민주노조를 만들며 인간선언을 했다.

그러고서 30년, 노동운동이 이룬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확장했고, 노동자 권리를 향상시켰다. 주 5일 노동 시대를 열었고,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쟁점으로 만들었다. 진보정치 시대를 열어 정치개혁에도 일조했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간단치 않은 역사였다.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자본가계급과 정권에 맞서서 격렬하게 투쟁했다. 공장과 거리 곳곳에서 선봉대·화염병과 백골단·최루탄이 충돌하며 피를 흘렸다. 감옥은 노동운동가로 차고 넘쳤다. 수많은 노동자가 죽고 해고됐다. 풍찬노숙과 궁핍을 마다하지 않았다. 노동운동 심장에는 기필코 세상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영혼이 펄떡펄떡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여기에 학생·농민·빈민·지식인 등의 헌신적 연대가 있었다. 시민의 응원이 있었다. 마침내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고 시민권을 획득했다.

노동조합운동은 시간이 흐르며 후퇴했다. 노동자가 주인 되자는 구호는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자는 구호로 후퇴했다. 세상이 후퇴하고 노동운동의 힘도 대폭 축소된 까닭이었다. 세상은 ‘보다 평등’은커녕 불평등에 불평등을 거듭했다. 자본과 노동의 격차가 벌어진 것은 둘째 치고, 노동자 간 임금격차도 동일 계급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다.

재벌과 역대 정부가 앞장서 만든 구조였다. 노동운동은 맞서 싸웠다. 총 드는 것 빼곤 다해 봤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운동도 했다.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 실험도 했다. 노동운동 혁신을 위한 논의도 수없이 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노력 중, 최근 부각되는 것이 사회연대전략이다. 민주노총 첫 직선에 출마한 네 후보 모두 사회연대를 강조했다. 당선된 한상균 위원장은 사회연대위원회를 설치했다. 진일보한 조치였다.

노동조합 전략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30년의 비싼 경험을 통해 냉정하게 확인했다. 지역사회라는 드넓은 땅을 재벌의 놀이터로 방치한 채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외딴섬에 고립돼 육지를 도모하는 것과 다름없는 꼴이었다. 그래서 지금, 노동조합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사회와 연대하자는 전략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 사회연대는 애초부터 노동운동의 기본전략인데, 우리가 소홀하게 취급한 영역이었다.

이전까지의 사회연대는 용산·밀양·강정 등 투쟁이 일어난 곳에 결합해 함께 싸운다는 것에 한정됐다. 그 투쟁이 끝나면 연대도 끝났다. 공중에 뜬 연대였다.

지금의 고민은 그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조합운동이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박히자는 것이다. 노동조합 바깥에 진지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 구상에서 나온 방안이 생활문화연대다. 지역의 다양한 삶속으로 파고들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런데 생활문화연대의 세부 방안으로 들어가면, 그게 노동운동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활동가가 나온다. 집수리, 아파트 경비노동자 쉼터 만들기, 밥상 나누기, 동네잔치, 위기 아동·청소년 지원, 김장 나누기, 장학금 사업 등등 생활문화연대는 말 그대로 일상 삶의 연대인 까닭이다. 기존 관성에서 보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생활문화연대의 의미를 설명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

얼마 전이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손우정 박사가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운동의 변혁전략이라는 전제를 깔며, 한마디 했다. “농활 가서 농민들에게 세상 문제 얘기하기 전에, 모내기부터 하지 않나. 생활문화연대는 바로 그것이다.” 그 말을 들은 10여명은 모두 감탄했고 무릎을 쳤다. 노동운동에서도 그것은 상식이었다. 노동조합 만들려고 공장에 취업한 활동가가 노동자 처지와 노조 필요성을 꺼내기 전에, 우선한 작업은 성실하게 공장일 하고 동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산에 가고 낚시 가며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지역에 들어가 다짜고짜 세상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노동자 투쟁에 함께하자고 하면 씨알머리도 먹히지 않는다. 한순간 먹힐 수는 있어도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그렇게 해서는 지역을 노동조합운동의 배후지로 구축할 수도 없다. 생활문화연대는 투쟁연대의 기반이다.

옆에 있던 사회공공연구원의 이재훈 연구원이 덧붙였다. “조합원이 돈 모아서 옆 사업장 투쟁하는 노동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면 시비가 없는데, 길게 보고 지역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면 시비가 생긴다.” 이 말에 또 다들 고개 끄덕였다. 후자의 경우 장학금만 주고 마는 경우가 있었기에 빚어진 현상이지만, 노동운동이 중장기를 내다보며 포석을 까는 안목이 없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당장 눈앞의 일이 급하니까 일단 까먹고 보자는 습성이 몸에 밴 까닭이다.(다음에 이어서)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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