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대책’의 윤곽이 드러났다. 정부는 20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 계획(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2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한 뒤 두 달여 만이다. 정부는 특별실태조사를 바탕으로 9월 말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발표한다. 앞서 가이드라인은 일종의 시그널인 셈이다. 주 대상은 공공기관이지만 민간부문도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가이드라인을 보면 과거 정부와 차별화한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절차다. 정부는 그간 전문가협의·노정협의·공공기관 간담회·일자리 신문고 등 의견수렴 절차를 밟아 왔다. 그간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책을 만들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이와 선을 그은 셈이다. 정부 책임도 인정했다. 사회 양극화의 온상인 비정규직 확산에 정부도 한몫했다고 인정했다. 정부는 공공부문이 모범 사용자로서 거듭나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상시·지속적 업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852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기간제(19만명)와 파견·용역(12만명)이 정규직화 대상이다. 종전보다 상시·지속적 업무 판단기준은 완화했고, 정규직 전환 예외 사유도 축소했다.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해소와 처우개선도 포함됐다. 정규직 전환 예외사유가 있더라도 공공기관이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전문가협의·노사정 협의·컨설팅용역을 통해 공공기관 노사가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이해관계자들의 대화와 협의를 바탕으로 정규직 전환 과정이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의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조치이기도 하다.

이처럼 종전과 달리 차별화된 점이 있음에도 가이드라인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충족한지는 의문이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전환 예외사유와 추진방식을 보면 갈등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며 가이드라인을 지적했다. 이를테면 기간제의 경우 ‘타 법령에서 기간을 달리 정하는 교사·강사’ 등 특정 직종에 대해 예외사유로 못 박았다. 파견·용역의 경우 다른 공공기관에 용역과 위탁사업을 외주화하면 정규직 전환 예외사유에 넣었다.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생명·안전과 관련한 업무임에도 자회사 공공기관에 외주화한 사례의 경우 바로잡을 수 없는 셈이다. 예컨대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유통 소속인 KTX 승무원의 경우 예외사유에 해당한다. KTX는 앞으로도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 홀로 안전업무를 담당하고, 코레일유통 소속 승무원은 승차표 판매와 서비스를 담당하는 식이다.

가이드라인을 보면 정규직 전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해소·처우개선 정책은 미흡해 보인다. 무기계약직은 공무직·상담직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되 신분증 발급, 승급체계 등 인사관리시스템을 세우기로 했다. 이러한 점은 무기계약직 차별해소에 소극적이던 과거 정부의 연장선이다. 이는 서울시의 사례와 대비된다. 지난 18일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 등 11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 2천44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공공기관에서 무기계약직은 별도 직군·직렬로 분류하며, 정규직에 비해 승진·복리후생에서 차별을 받았다. 서울시는 공공기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 정원에 포함하고, 동일한 인사관리시스템을 적용한다. 이를테면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직접고용된 무기계약직이던 승강장 안전문 보수원은 서울교통공사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서울시는 상시·지속적 업무 기간제 정규직 전환에 이어 무기계약직 제로를 추진한다.

이번 가이드라인이 완벽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정규직 전환 규모를 두고 정부 내에서도 혼선을 빚은 것을 볼 때 그렇다.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인 만큼 앞으로 보완돼야 한다. 정규직 전환 예외사유의 경우 전문가·노동단체와 좀 더 논의를 했으면 한다. 예외사유로 일부 직종을 특정하는 것은 재검토해야 한다. 파견과 위탁사업을 자회사 공공기관에 외주화할 경우 예외사유로 분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해당 업무와 직종의 성격을 세심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미 자회사 공공기관에 외주화했더라도 생명·안전과 관련한 업무일 경우 모회사 공공기관과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새 정부는 무기계약직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접근했으면 한다. 세간에선 중규직이라고 비웃는 무기계약직을 정부만 '정규직'이라고 자기최면을 거는 것은 곤란하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새 정부와 어울리지 않는다. 정부는 서울시의 사례를 참조해 무기계약직 차별해소에 적극적으로 임했으면 한다. 9월 말 정부가 발표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로드맵에서 이러한 점들이 보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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