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공장에서 일하다가 악성 림프종에 걸린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SK하이닉스 노동자가 직업성 암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은 최근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노동자 김아무개(47)씨의 산재보험 요양급여 지급 신청을 승인했다. 김씨는 1995년 장비엔지니어로 입사해 임플란트·화학기상증착 공정에서 일하다가 2005년 10월 악성 림프종에 걸렸다. 이후 10년간 항암치료를 받으며 치료와 재발을 반복했고 2015년 3월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에 산재를 신청했다.

2년간 역학조사를 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발암물질 노출 수준이 미미하다”며 김씨의 악성 림프종과 업무의 관련성이 낮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심의에서 역학조사 결과를 뒤엎고 산재를 인정했다.

서울질판위는 김씨가 근무하던 초창기에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충분한 보호장구 없이 업무를 수행했고, 노후화한 임플란트 설비 때문에 방사선에 노출될 위험이 높았다고 판단했다. 또 엔지니어 업무 특성상 철야·비상근무를 통해 유해인자에 장시간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주목했다.

서울질판위는 “김씨가 근무하던 곳은 과거에는 현재 공정보다 안전관리 기준과 규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해 현재의 작업환경측정 결과나 역학조사 결과보다 실제 유해요인 노출 수준이 높았을 것”이라며 “이런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여러 유해물질로 인해 상병이 발병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이 반도체·LCD 공장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을 인정한 것은 모두 11건이다. 법원은 8건을 인정했다. 대부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포함해 삼성 계열사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다. SK하이닉스 노동자의 암이 산재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올림측은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에서 직업성 암에 걸린 노동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이 잇따라 암이나 난치성 질병에 걸리자 2015년 11월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만들어 1년간 자체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검증위는 노동자들의 질병과 업무와의 인과관계 판단을 유보했다. 회사측은 산업보건지원보상위원회를 발족해 직업성 질병이 의심되는 노동자들에게 보상을 해 주고 있지만, 구체적인 규모와 대상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반올림 이종란 공인노무사는 “이번에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한 만큼 직업성 암에 걸린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이 더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며 “노동자들이 공단에 산재를 신청해 반도체공장의 산재가 더 알려지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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