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1일 전 세계 노동자의 축제 날에 거제조선소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해양 플랫폼 공사를 위해 설치된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 타워크레인이 충돌한 것이다. 이 대형 사고로 무려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었다. 특별한 날에 발생한 사고여서 그런지 참사 소식은 곧바로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전해지면서 해양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어두운 민낯이 알려지게 됐다. 그런데 대기업 사고답지 않게 사고원인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후진적인 단순 ‘신호’문제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5년 9월 부평역 인근 공사장 타워크레인이 쓰러져 철길을 덮치는 바람에 지나는 승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사고도 있었다. 잊을 만하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크레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과 국가적 차원의 전문신호수 육성 방안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타워크레인은 대형 구조물을 설치하고 양각 자재 양중을 많이 하는 조선소와 건설현장에서 집중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건설현장은 갈수록 대형화·고층화·기계화돼 가고 있다. 수십미터 높이 고공에서 작업을 하는 크레인 의존도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지상에서도 이동식크레인·카고크레인·크롤라크레인·겐트리크레인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크레인 작업이 이뤄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장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안전교육을 하는 건설회사가 거의 없다. 다수 안전관리자들은 대학에서 건축시공 관리를 전공했기에 건설기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다.

건설현장에는 27개 기종의 45만대 건설기계가 존재한다. 건설기계 장비 임대업은 철저하게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뤄지므로 체계적인 안전관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최근에는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에서 중고 형태의 값싼 장비들이 무차별적으로 수입돼 시민들과 현장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두 눈 뜨고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비 고유 특성에 맞게 사전지식을 습득한 ‘전문신호수’ 육성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에서 분석한 크레인 관련 재해를 보면 매년 70~8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또 다른 근거자료도 있다. 건설노조가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된 안전보건공단의 중대재해조사 의견서를 분석했더니 신호 문제로 인해 한 해 동안 146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국내에는 5천300여대의 타워크레인이 등록돼 있다. 연평균 가동률은 70%다. 3천710대가 가동 중이라는 뜻이다. 건설현장 특성상 크레인은 2인1조 신호체계가 이뤄져야 하므로 타워크레인 1대당 최소 4명의 전문신호수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1만4천840명의 전문신호수가 필요하다. 공사 규모에 따라 전문신호수는 더 많이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건설현장 경험이 최소 20년 이상 돼야 신호수를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건설기계업에서는 최초 장비 자격증만 취득하면 보수교육은 전혀 받지 않아도 된다. 1인 사업자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보수교육에 대한 노동법적 접근도 어렵다. 하여 전문신호수라도 육성해 안전과 고용창출의 이중효과를 기대해 보자는 것이다. 건설기계 사고는 발생시 곧바로 중대재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직·간접적인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10개가 넘는 건설현장 공정 중 두 번째로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건설기계 사고였다. 이 심각성을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만 몇 년 전부터 한국안전관리사협회에서 타워크레인 전문신호수 교육을 실시하는 정도다.

건설현장에 전문신호수가 없다는 것은 도로에 교통신호등이 없는 것과 같다. 이미 건설현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잠식당해 가고 있고 체계적인 신호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의사소통 자체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신호수제도를 도입해 국가자격증화한다면 안전도 확보할 수 있고 1만4천840명이나 되는 전문직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이미 전체 공사비 중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 신호수에 대한 임금항목이 책정돼 있으므로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도 들지 않는다. 자격증을 취득한 신호수들은 자긍심을 가지고 산업재해 예방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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