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0일 성과연봉제나 연공급제를 대신할 임금체계로 직무급·성과급을 제시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자리였다. 5월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성과연봉제와 연공급제를 대신할 임금체계로 직무급을 언급한 적은 있다. 그런데 새 정부 인사가 공개석상에서 성과급제까지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 정부가 직무·성과급제를 새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과연봉제를 반대했던 노동계가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직무·성과급제는 무엇이 문제일까.


직무성과급제 현장 갈등 초래, 한국형 임금체계 필요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의 연공급제가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과연 연공급제가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가. 연공급제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노동 현실을 반영한 임금체계다. 연공급제에는 고속성장 시대에 소득이 불균형하고 복지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고용안정과 임금상승·임금안정성을 보장해야 했던 시대적 상황이 반영됐다. 따라서 연공급제를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않은 임금체계라고 전제하면서 직무성과급제를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직무급제는 직무가치를 평가해 유형화해야 한다. 직무구분·직무가치 요소와 배점, 숙련 반영과 승급, 임금수준 격차 해소 등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이 예상된다. 60여개 직종 간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병원에서는 직종 간 갈등으로 인한 의료서비스 차질도 우려된다. 직무급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물론 연공급제가 가진 문제점과 한계도 있다. 임금 격차와 임금구성의 복잡성, 직무조건 미반영 등이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구현, 산업·업종별 표준임금제 마련, 생애주기와 숙련도 반영, 직무조건의 난이도 반영을 통해 미래지향적이고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한 한국형 임금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히 일방적 밀어붙이기 방식이 아니라 산업·업종별 노사 대화를 통해 합리적이고 수용가능한 방안을 모색·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과연봉제 이름만 바꾼 직무성과급제
심희천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홍보본부 실장

심희천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홍보본부 실장

최근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각 은행은 직원별로 사전 예약실적 목표를 할당하는 등 과당경쟁과 불완전 판매 조짐이 커지고 있다. 지금도 승격 등을 둘러싸고 특정 직무에 대한 선호와 직원 상호 간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정부나 은행연합회 생각대로 직무별 급여 차등과 성과에 따른 보상이 이뤄진다면 불완전 판매로 인한 고객 피해나 금융산업의 공공성 훼손이 예상된다.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상품이 아니라 실적을 위한 상품 판매가 이뤄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조직 내부에서의 협업 문화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공공성이 중요한 산업일수록 급여 차등을 통해 개인에게 과도한 경쟁을 요구하기보다는 경쟁 이외의 다른 가치들을 공유하고 장려할 수 있어야 한다. 직무성과급제는 성과연봉제를 명칭만 바꾼 것일 뿐, 그 문제점은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다.


노정 대화 전에 방향설정? 박근혜 정권 전철 밟나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국장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국장

노정 간 논의를 진행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직무성과급으로 방향을 설정해 놓은 것처럼 이야기를 한 것은 성급해 보인다. 노정 간 대화가 앞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정부가 방향을 설정해 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기획재정부도 향후 2~3년간 노정이 함께 임금체계를 논의해 보자고 했다. 정부 당국자도 노정 대화에 마음이 가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재계 관계자가 모인 자리였다지만, 일자리위 부위원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공식적으로 할 말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 노정 합의로 문제를 풀어 가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합당한 후속조치가 따라야 한다. 임금체계 변경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노정이 함께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직무성과급 무조건 옳다는 태도, 노동자 동의 얻기 힘들어
송보석 금속노조 사무차장(대변인)

송보석 금속노조 사무차장(대변인)

민간부문 노사는 임금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첫 관문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통상임금 문제 때문이다.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합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의 신뢰회복이 우선해야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상임금 문제로 노사가 갈등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떠한 인금체계 개편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조합원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쉽지 않다.

2013년 12월 통상임금과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노동계와 사용자가 구상하는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은 드러나 있다. 노동계는 기본급이나 고정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단순화를, 재계는 성과와 연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단순화를 추구한다. 정부가 구상하는 직무성과급제가 어떤 형태의 것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제조업에 도입하는 것은 동의할 수도 없고, 도입이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동차 생산공정, 조선업 공정 등 제조업의 수많은 공정과 업무에 대해 어떻게 성과를 계산할 것인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연공급이 도입된 취지와 배경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직무성과급이 옳다는 식의 태도는 노동자들이 수용하기 어렵다.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어떤 형태가 올바른 것인지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임금체계, 숙련을 매개로 천천히 바꿔야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말한 직무성과급제는 실체가 불분명해 보인다. 이 부위원장이 언급한 성과급제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따른 집단성과급제와 지난해 실시한 개인 성과연봉제를 합친 것인지, 기존 제도를 보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별 직무급제와 성과급제가 결합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개인성과급제가 기본급에 손을 대지 않고 성과급제만 실시하는 것이라고 해도 노동계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행한 성과연봉제와 크게 차이가 없이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반대 의견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직무급제라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합리적인 임금체계로 보이지만 직무평가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평가가 사용자 주도로 흘러 노동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연공급제와 직무급제 모두 장점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기존 연공급체계 대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숙련을 매개로 두 임금체계의 차이를 절충하고 점진적으로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연공급→연공급·숙련급→직무급·숙련급→직무급’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임금체계 개편의 부작용을 줄여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금체계의 속성과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개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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