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과정에서 얻은 병을 통상 직업병이라고 부른다. 엄밀하게 보자면 직업성질환은 직업적인 활동 중에 작업환경에 존재하는 유해인자로 인해 발생하는 급·만성질환을 말하며, 작업관련성질환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직업성질환은 작업환경 중 비교적 유해인자와의 관련성이 뚜렷한 질환(진폐증, 소음성 난청, 중금속이나 화학물질 중독 등)이며, 작업관련성질환은 직업요인과 업무 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질환(뇌심혈관계질환·근골격계질환 등)을 말한다. 산재보험에서는 둘 모두 보상 대상으로 하며 ‘업무상질병’이라고 부른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서 제시하는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유해·위험요인을 취급하거나 노출된 경력이 있을 것, 유해·위험요인을 취급하거나 노출되는 업무시간, 종사한 기간 및 업무환경 등에 비춰 볼 때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인정될 것,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되거나 취급한 것이 원인이 돼 그 질병이 발생했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될 것 등이다.

업무상재해는 업무수행 중에 신체적 외상이 발생하는 사고로 원인이 비교적 뚜렷해 산재보상에서의 쟁점은 주로 ‘업무수행’의 범위를 따지는 것이다. 반면 업무상질병은 일반 질환과 구별되는 특이 증상이나 병리소견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직업 관련 요인과 일반 환경 요인들이 혼재돼 있고, 급성 중독이 아닌 경우 오랜 기간에 진행돼 노출과 질병 발생 간에 잠복기가 존재한다. 직업성 유해인자들은 개인의 감수성(susceptibility)에 따라 질병 발생에 큰 차이가 있으며, 기저 질병이 있는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쟁점사항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의학적인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재해노동자에게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질병의 업무 관련성 입증을 사안별로 다투고 복잡한 심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동안 재해노동자와 가족들은 심리적·경제적으로 고통받기 마련이며, 행정적 처리절차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이에 주요 업무상질병(특히 작업관련성질환)에 대해서는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을 마련하려는 연구와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의학적이고 역학적인 연구 결과들을 기반으로 기초적인 인정기준을 설정하게 된다.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만큼이나 행정적 절차 간소화를 통해서 피재 노동자의 어려움을 신속히 해결하는 것 역시 중요한 목적이기에, 일정한 수준의 조사를 수행하면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량화·표준화되는 방식으로 인정기준을 마련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고용노동부 고시 제2016-25호)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적 연구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마련된 인정기준은 비록 미흡하더라도 그 취지상 당연인정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정기준에 미달하면 업무 관련성을 아예 부정하는 업무상질병 배제기준 또는 필요조건이 아니라 기준에 부합하면 별도의 복잡한 행정절차 없이 바로 승인하는 당연인정기준, 충분조건으로 여겨야 한다.

이미 2008년에 노동부 용역으로 진행된(그러나 적용되지 않은) ‘근골격계질환 신체부담작업의 업무관련성 정도에 관한 연구’에서 주요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인정기준안과 함께 제시한 다음의 전제조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이 지침을 넘어서는 업무에 종사한 경우, 근골격계질환 발생에 업무 외 요인이 명백하게 관련됐다는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 즉 기왕증 또는 퇴행성 변화가 있더라도 지침을 넘어서는 업무에 종사한 경우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 지침을 넘어서는 업무에 종사한 경우 근골격계질환 산재 승인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아닌 근로복지공단 지사에서 빠르게 행해져야 할 것이다. 셋째, 이 지침에 미달하는 업무에 종사한 경우 근골격계질환 발생이 업무와 관련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달하는 업무일 경우에는 전문가 심의(현행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받아야 한다.”

업무와 관련한 질병의 원인을 과학적(의학적·역학적 등)으로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방을 하려면 원인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성질환과 작업관련성질환 사례를 다루는 방식이 산재승인 여부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직업병을 예방할 것인가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진전이 있을 것이다. 전제조건은 산재보험이든 건강보험이든 아픈 노동자들의 질병에 대한 요양과 생계를 사회가 보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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