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산재 발생보고를 회피하려는 회사의 강요에 못 이겨 강제로 출근하고 있다는 증거가 담긴 자료가 공개됐다. 노동계는 현대중공업에서만 71건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산업안전보건법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제도개선 요구에 힘이 실리게 됐다.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는 11일 오전 울산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가 다치더라도 출근만하면 사업주가 산재 발생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관련 증거를 공개했다. 대책위는 올해 4월부터 5월까지 2개월간 현대중공업 사업장을 대상으로 산재은폐 사례를 조사했다.

조사과정에서 발목·어깨·손가락·손목에 깁스를 하고 출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을 확보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현장에서 일을 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무리해서 출근하는 모습을 여럿 확인했다"며 "일하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휴업 3일 조항을 피하기 위한 사업주 강요 때문에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출근을 해야 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산재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을 경우,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는 고용노동부에 산재 발생 사실을 1개월 안에 보고해야 한다. 이번 조사로 재해노동자가 3일 이상 출근을 할 수 없는 상황일 경우에 보고하도록 돼 있는 법 조항이 현장에서 악용되는 사례가 드러난 것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지회장 하창민)의 자체 조사 결과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왔다. 지회에 따르면 산재노동자 면담과 울산지역 병원 실태조사를 통해 60건의 산재은폐 사례를 확인했다. 하창민 지회장은 "손가락 골절·안면부 봉합·늑골 골절·머리 찢어짐·화상 등 일하다 다치는 사고를 당했지만 공상처리하거나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하는 산재은폐를 확인했다"며 "대부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산재를 확인한 병원이 산재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해 산재은폐를 예방하고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국회는 산재발생 보고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책위는 산재은폐를 확인한 71건에 대해 이날 노동부에 집단 진정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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