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6.24 월 20:05
상단여백
HOME 칼럼 연재칼럼 김기덕의 노동과 법
투쟁을 멈추라는 ‘보잘것없는 세상’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가뭄이라더니 장마다. 오존농도와 자외선지수를 말하더니 강수량으로 일기를 예보하고 있다. 2017년 7월, 촛불대선으로 열린 세상은 2개월째 낡은 적폐의 세상을 청산하겠다고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8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더는 ‘문빠’가 비난의 말이 아니고, 문재인에 대한 어떤 비난도 비난받는 날이다. 박근혜 정권이 성과연봉제 등 이른바 노동개혁을 몰아붙이던 때가 불과 1년 전인데 그 사이에 촛불집회, 탄핵 해임, 대통령선거 등 엄청난 사건들을 지나서 오늘은 문재인의 세상이다. 1천700만여명이 이 나라의 광장에 쏟아져 나와 낡은 세상을 몰아내겠다고 촛불을 들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결의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결정으로 해임했을 때 그것은 촛불시민들, 이 나라 대다수 국민의 바람이었다. 돌이켜 보면 대단한 바람으로 만든 세상이다.

2. 나는 노동운동의 최고강령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이렇게 모른다고 실토하고 보니, 나는 무슨 신념의 강자는 아닌 것임이 틀림이 없다. 노동자가 세상을 독차지하는 꿈은 이 세상을 사는 내 꿈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내가 종종 말해 왔던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은 최고강령에 훨씬 밑도는 것이겠다. 이렇게 끄적거리고 보니 갑자기 세상살이가 보잘것없어 보인다.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인 것을. 그런데 이렇게 보잘것없이 살아가는 내 눈에도 보인다. 우리 노동운동은 문재인과 민주당에서 멈춰 서 있다. 문재인이 그리는 꿈이 오늘 이 나라 노동운동의 꿈이 돼 버렸다. 문재인의 꿈에 갇혀 있다. 문재인의 세상이 우리 노동운동의 세상으로 보인다. 그 꿈마저 깨져 버리는 세상이 두렵다고 겁을 집어먹은 표정을 하고 서 있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최저강령을 외쳐 나서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3. 박근혜 정권은 비정규직·저임금 등 오늘의 노동문제는, 대기업 정규직의 탓이라고 철밥통 고용보장과 억대연봉을 강제로 삭감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추진했었다.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혁은 적폐라고 폐기하라고 노동자들은 외쳤다. 그러고서 촛불대선을 지나 문재인은 촛불혁명을 완성하겠다며 적폐 청산을 공약하고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오늘은 사회적 대타협을 말하며 대기업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고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은 수시로 설득하고 압박하고 있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파업에도, 적폐를 청산하라는 투쟁에도 시도 때도 없이 노사타협을 주문하며 노동자 파업투쟁을 비난한다.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저임금 노동 격차가 문제라고 대기업 정규직이 적극적으로 양보하라고 사회적 대타협을 말한다. 강제에서 설득으로 방법이 바뀐 것 말고 문제도 문제인식도 다르지 않은 듯이 대응하고 있다. 그때나 오늘이나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최저임금 노동자만의 문제로 노동문제를 본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는 귀족노동자라고 반대쪽에 세워 놓고 본다. 노골적으로 대놓고 비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만 다르다. 그러니 노동문제 해법은 정해져 있다. 하후상박이 빠지지 않는다. 직접 빼앗을 것이냐 사회적 대화를 내세워 스스로 내놓게 할 것이냐 하는 상박의 방법에서 다를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조합이 사용자 자본을 상대로 교섭과 파업투쟁으로 쟁취하는 보다 높은 수준의 노동자권리는 말하지 않는다. 낮은 수준의 노동자권리만 문제라고 보장하겠노라고 말하며 파업투쟁을 비난하거나 자제하라고 한다. 보잘것없는 세상이다.

4.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이라는 노동운동의 꿈으로 보자면 오늘은 보잘것없는 세상이다. 촛불혁명을 계승하는 촛불대통령으로 불리고픈 만큼 문재인의 꿈은 대단한 것이겠다. 노동운동의 꿈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문재인의 꿈에 갇혀 있다. 고작해야 문재인이 공약한 비정규직·최저임금 등의 노동문제를 주장하는 파업이라고 ‘사회적 총파업’이라 투쟁을 변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이제 본격화될 임단투 파업투쟁을 어떻게 변명해서 넘어갈 것인지, 나는 이 나라 노동운동이 안쓰럽다. 분명히 민주노총 등을 포함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촛불집회로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는 데 앞장섰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촛불시민으로 참여해 ‘박근혜 없는 세상’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 5월9일 촛불대선을 지나 문재인의 시대가 왔다. 비정규직·최저임금 등 많은 노동공약을 제시했고, 아직까지 그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문재인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보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공약 이행 의지가 확고한 만큼 이 나라 노동운동은 문재인 앞에서 힘을 잃는다. 뭐 1년만 기다려 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듣고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촛불집회를 함께 했던 ‘동지’라도 이 나라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자부문 관리부서로 전락한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어느새 이 나라 노동운동은 문재인과 한편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권력의 주변을 배회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일인 양 착각이 들기도 한다. 노동현장의 일을 해결하겠다고 노동운동의 간부들이 권력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청와대·여당과 노동부 등에 오가는 일이 앞으로 이 나라 노동운동의 일이 되고 말지 모르겠다. 뭐 그래도 좋다. 그런데 자꾸 그들은 투쟁을 멈추라 한다. 1년 전 박근혜 정권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이 나라 노동운동에 대해 다시 하고 있다. 기다려 달라, 믿어 달라,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다. 그들은 공약했고 그걸 확고하게 이행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이런 문재인 정부 앞에서 노동운동은 믿고 기다려 줄 것이냐, 아니냐를 선택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미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에는 전혀 선택권이 없다. 오직 기다려 줄 것을 강요받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무엇이 노동운동을 이 지경에 빠뜨린 것일까. 노동운동이 쟁취해야 할 노동자권리를 문재인 정부가 대신해 줄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다려 주지 않고 투쟁했다가는 반동의 역풍이 몰아칠 수 있다고 1년만 믿고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일 게다. 노동운동의 투쟁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이행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으니 투쟁 없이 기다려 달라는 것이고, 노동운동이 투쟁으로 쟁취할 노동자권리를 권력을 차지한 자신들이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다. 노동자투쟁은 문재인의 노동공약을 이행하는 데 장애고, 노동운동 대신 권력으로 노동자권리를 보장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적폐의 박근혜 정권이 노동자투쟁을 적대시해 탄압했다면, 촛불의 문재인 정권은 노동자투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여러번 문재인의 노동공약에 관해서 읽어 봤다. 그건 이 나라 노동운동의 최저강령에 훨씬 밑도는 노동공약일 뿐이었다. 그걸 보장해 주겠다며 노동자투쟁을 멈추라 할 수 없는, 지극히 낮은 수준의 공약이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비정규직 대책,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저임금대책,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간단축 대책 등, 그것으로 멈춰 서는 이 나라 노동운동이 고사하고 마는 수준의 노동자권리에 관한 공약 투성이였다. 그런데도 그걸 추진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으니 투쟁을 멈추는 선택을 한다면 정말 이 나라에서 노동자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할 노동운동은 존재하기 어렵다. 오늘은 노동자권리로 보자면 여전히 보잘것없는 세상인데 노동운동은 투쟁을 멈추라 하고 있다.

5. 그런데 말이다. 사실 이 투쟁을 멈추라 하는 보잘것없는 세상은 그 누구보다도 노동운동 스스로 초래한 세상이다. 그러니 그걸 말했다고 문재인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우리 노동운동은 언제가부터 비정규직·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문제를 넘어서는 노동자권리와 노동기본권을 위한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투쟁해 오지 못했다. 그것이 사용자 자본과 권력의 귀족노조·귀족노동자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한 탓인지 몰라도 분명히 근래 이 나라 노동운동은 보다 높은 수준의 노동자권리, 새로운 노동자권리를 위한 요구도 내세우지 못했고 당연히 그걸 위한 투쟁은 꿈꾸지 못했다. 문재인의 꿈에 이 나라 노동운동이 갇힌 것은 문재인의 탓이 아닌 것이다. 문재인의 꿈을 넘어서는 노동자의 꿈을 세워 내지 못한 이 나라 노동운동 자신의 탓인 것이다. 그러니 문재인의 꿈이 노동자의 꿈이 되고만 이 보잘것없는 나라에서 무엇보다도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한 꿈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를 공약한 문재인 정부에 장애물이 아니다. 공약한 대로 노동자권리 실현을 추진하는 한, 노동운동은 그걸 방해하는 사용자 자본 등에 맞서는 개혁의 힘인 것이고, 촛불집회에서처럼 문재인의 동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동지가 강해져야 문재인이 산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기덕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