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태용 공인노무사(영해 노동인권 연구소)

구미공단에 핀 들꽃,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강원도 삼척 동양시멘트지부에 연대집회를 갔다가 구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었다.

차헌호 지회장이 질문을 했다. “노무사님, 우리 투쟁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넷신문을 통해 간간이 소식을 들었을 뿐이고, 무슨 점쟁이도 아닌데, 미래 투쟁의 결과를 답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어서 잠시 주춤했다. “이긴다는 보장은 못하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과정 아니겠느냐”고 답변했던 기억이 난다. 주변에 함께 있었던 조합원들은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 표정이었으나,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떨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후 이 부정적인(?) 답변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어 CMS 정기후원을 신청해 현재까지 매월 후원하고 있고, 책 다섯 권을 공동구매해서 지인들과 나눠 읽었다. <들꽃, 공단에 피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조합원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통해 그 해답을 알려 주고 있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으로서 자존감’이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3~4년 동안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겨 다니면서 고용불안을 계속 느끼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이 공부를 못해서 비정규직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자책을 하게 되며, 역설적으로 자신만 잘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필자도 다람쥐 쳇바퀴처럼 3~4년 동안 비정규 노동자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다 보니 조합원들의 이런 생각에 완전히 공감한다. 그래서 아사히 노동현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 관리자들에게 물량을 뽑는 기계부품 취급을 받다가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난 뒤에는 오히려 관리자들이 눈치를 보는 장면에서는 온몸이 짜릿짜릿한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인간다움의 선언’인 것이다.

노동현장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해 본 노동자들, 또는 민주노조를 설립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은 아마 그런 짜릿짜릿한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가고 시대가 각박해졌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결국 이윤보다 인간이 아닐까.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지 50년이 다 돼 간다. 그런데 우리 사회 노동자들은 노동인권을 얼마만큼 보장받고 있나? ‘노동존중 사회’에 얼마나 부합할까?

전태일 열사가 노동현장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민원을 제기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져서 결국 분신으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는데, 그 외침은 2017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헌법상 노동 3권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고용노동부와 검찰)는 원청 아사히글라스 자본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확고한 법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사법부인 행정법원에 그 책임을 미루고 있다. 구미지역 노사관계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해야 할 구미시는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농성장 철거를, 원청 아사히글라스 자본에게는 온갖 편파적인 특혜를 제공하는 기업 친화적이고 반노동인권적인 행위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동인권 점수는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에 반해 3만5천명 이상의 구미시민들은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의 집단해고가 부당하다며 공감하고 서명까지 해 줬으니 시민들의 노동인권 점수는 상위권이라고 봐야 된다. 조합원들의 가족·지인들의 반응도 중요한데, 일부 부정적이거나 현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많은 지지를 하고 있다.

‘노동존중 사회’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인간다움을 선포한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확고한 연대와 신뢰, 지지다. 이 책은 노동운동을 장황하거나 당위적인 글로 표현하지 않는다. 조합원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들었던 의문과 고민, 선택의 순간에 했던 고민을 진솔하고 따뜻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현재 투쟁도 자신의 삶 속에서 주요한 자양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이런 투쟁이 구미공단에서, 나아가 전국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전파될 수 있는 ‘씨앗’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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