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패션회사다. 스웨덴 회사로 의류는 물론 수영복·액세서리·신발·실내 장식물 등 다양한 상품을 판다. 재미난 점은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지 않듯이, H&M도 의류나 신발은 직접 만들지 않는다. 아이폰은 대만기업인 폭스콘이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 애플에 납품하는데, H&M 제품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2천개가 넘는 하청업체들이 만들어 H&M에 납품한다. 글로벌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의 최정점에 H&M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사슬에서 H&M을 위해 제품을 만드는 노동자는 160만명에 달한다.

H&M 관련 임무를 위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했다. 제조업노조 국제단체인 인더스트리올 섬유산업국장, 스웨덴 최대 제조업노조인 IFMetall 국제비서, H&M 본사의 공급업체 책임자가 함께했다. 방문 목적은 H&M과 인더스트리올이 체결한 글로벌 기본협약(Global Framework Agreement, GFA)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GFA는 다국적기업과 인더스트리올 같은 국제노조가 글로벌 수준에서 맺는 노동기본권과 안전보건 등 초보적인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이다. GFA가 기업의 행동강령(Code of Conduct)과 다른 점은 전자는 노동조합이 참여한 교섭을 통해 만들어지는 글로벌 노사의 양자 협약인 데 반해, 후자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기업 정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인더스트리올은 H&M을 비롯해 47개의 다국적기업과 GFA를 체결했다. 화이트칼라 노동조합의 국제조직인 UNI는 50개의 GFA를 체결해 놓고 있다. GFA는 대부분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유엔 글로벌 콤팩트 등을 반영해 인권 존중, 노동권 보장, 강제노동·아동노동 철폐, 차별 금지, 적정임금 보장, 과도한 노동시간 규제, 적정한 안전보건 제공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H&M과 인더스트리올이 체결한 GFA의 특징은 협약의 적용 대상이다. 보통 GFA는 글로벌 수준에서 다국적기업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독일 자동차기업인 폭스바겐의 GFA는 세계 곳곳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 반면 H&M과 인더스트리올의 GFA는 공급업체에 적용된다. 즉 글로벌 공급사슬에 속한 2천개가 넘는 공장에서 일하는 160만 하청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GFA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GFA 체결 방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향식이기 때문에 직접고용이냐 간접고용이냐를 불문하고 개발도상국에 위치한 사업장에서는 그 내용 자체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는 설사 알고 있더라도 협약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이 약한 나라의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이 있어도 취업규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기업별 노조주의가 횡행해 노조의 현장 장악력과 교섭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H&M과 인더스트리올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에 노사 당사자로 구성되는 국가별 감시위원회(National Monitoring Committee, NMC)를 설치해 GFA 홍보를 강화하고 그 이행점검을 개선하기로 했다. NMC가 설치된 나라는 캄보디아·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터키·미얀마 등 5개국이다.

베트남은 세계 의류산업에서 주요 생산국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사슬에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베트남 경제성장의 결과 소비력도 커지면서 새로운 판매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이유로 H&M은 호찌민에 판매점을 열고 베트남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생산지이자 판매지로 H&M의 기업 전략에서 중요 국가로 떠오른 베트남에 NMC 설치 가능성을 타진해 보자는 게 이번 방문의 목적이었다.

IFMetall 노조에 속한 H&M 직원은 거의 없다. 스웨덴에 H&M 본사는 있는데, 생산공장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160만 하청공장 노동자 중에는 인더스트리올 조합원이 꽤 된다. 이런 이유로 IFMetall과 인더스트리올이 H&M과 GFA를 체결하게 됐다.

베트남에서 H&M 제품을 만드는 공장은 52개인데, 한국 기업도 제법 있다. H&M 같은 세계적 패션브랜드가 창조한 글로벌 공급사슬의 중간에 한국 기업들이 다수 자리 잡고 있다. 사슬의 밑바닥에 있는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을 고용해 상품을 만들어 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다국적기업에 납품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H&M과 인더스트리올이 체결한 GFA의 성공 여부는 사슬의 중간고리를 형성한 한국 기업을 어떻게 포섭하는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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