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오늘의 글은 모든 노조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니다. 비정규직·하청 노조, 특히 신규 노조는 해당하지 않는다. 함께 고민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 곳곳에서 임금인상투쟁(임투)이 한창이다. 그와 관련해 활동가들이 종종 푸념 삼는 얘기가 있다. 10년 훌쩍 넘은 푸념이다. “뭣 좀 해 보려 해도 임투 때문에 되는 게 없군.” 아니, 이게 뭔 소리지? 노동운동 원론에 따르면 임투는 노동자의 계급의식과 투쟁력·조직력을 높이는 것인데, 임투 때문에 뭘 하는 게 어렵다고?

세상 모든 투쟁이 정당한 게 아니듯, 노동운동가들이 투쟁을 통해 세상 뒤집자고 부르짖으며 세상 뒤집는 혁명은 목숨까지 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화염병·쇠파이프가 제 앞에 놓였을 때 뒤로 빠졌던 경우가 많듯, 현실은 교과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허다한데, 이 시기 임투가 그렇다.

노동운동 초기엔 임투가 거대한 노동자 학교였다. 조합원의 계급의식을 높였고, 투쟁력·조직력을 강화했다. 각종 연대에도 적극 참여했다. 웬만한 지역 집회에도 수천수만이 어렵지 않게 모였다. 지역 총파업도 할 수 있었다. 조합원의 삶이 워낙 밑바닥이라 임금인상이 절박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옛일이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회상하며 현실을 탓해 봐야, 한국전쟁과 보릿고개 운운하며 태극기 흔드는 그네들과 다를 바 없는 꼴이 될 뿐이다.

임금이 어느 정도 오른 사업장에선 임투가 더는 학교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상당수 가정에서 해마다 기일이 되면 영혼 없이 의례적으로 지내는 제사처럼, 상당수 사업장의 임투는 관성이 됐다. 파업을 하건 안 하건 인상률은 적당한 수준에서 결정된다.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니, 임투가 시작되면 조합원도 어느 정도 인상될지 대충 짐작하고 실제 그리 타결된다. 기 쓰고 매달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조직력·투쟁력에도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계급의식을 높이는 것도 아니다. 파업 때 조합원을 붙드는 건 포기하다시피 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시키지 않으면 항의에 시달리느라 집행부는 볼 장 다 본다.

상황이 그런 데다, 임투가 사회에 미치는 낙수효과도 사라졌다. 이전엔 선도 노조가 빡세게 투쟁해서 인상 폭을 결정하면, 그에 근접하게 전국 인상률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업장의 임금인상으로 그친다. 영향을 미쳐 봐야 비슷한 좋은 조건의 다른 재벌 소속사, 또는 그룹 소속사 정도다. 그것조차 무임승차에 보탬을 줄 뿐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임투 시기가 되면 연대가 축소된다는 점이다. 연대하지 않는 노조는 제 밥그릇만 챙기는 이익단체와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러려고 민주노총 만든 게 아니다. 한데 임투가 연대 의식·실천의 강화로 연결되기는커녕 거꾸로 가고 있다.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비정규직 같은 사안으로 집회를 잡거나, 또 무언가 절박한 연대투쟁이 벌어져 현장에 연락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똑같다. “사업장 임투 일정 때문에 어렵다.” 업종·지역·정파 집행부를 가릴 것 없이 돌아오는 대답이다. 총연맹·산별노조(연맹)·지역본부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정파도 마찬가지다. 임투 일정이 잡혀 있고 교섭을 준비한다는데, 뭐라 할 수 있겠나. 상급조직 권위가 예전처럼 먹히는 시대도 아니다.

이런 노조의 활동가들과 나누고 싶은 고민이다. 1년 주기 임투를 2년마다 진행하는 단체협약투쟁(단투) 주기로 묶자는 것이다. 그러면 집행부나 조합원 모두 2년치 임금을 제대로 인상시키고 더 나은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좀 더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임단투가 없는 1년은 연대의 해로 삼으면 어떨까. 1년 동안 집중해서 비정규직·하청·청년·영세상인·장애인·이주노동 등 계급계층 연대에 나서고, 최저임금·여성·녹색·평화·통일·세월호 등 각종 사안에 연대하고, 풀뿌리 등과의 지역연대에 나선다면, 노동운동 발전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한국 사회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돈에 묶인 조합원 삶도 풍성해지지 않을까. 임투의 해에도 연대의 기운이 식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 금속노조 일각에서 검토한 문제였다. 산별교섭이 성사되면 검토하기로 하고 중단된 고민이었다. 아직까지 산별교섭은 성사되지 못했고, 고민은 묻혀 버렸다. 굳이 산별교섭이 성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다.

진보도 안 가 본 길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운동한다고 해서 항상 혁신적인 것도 아니고 도전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하던 대로 할 때가 많다. 20세기 동유럽 사회주의가 망한 이유 중 하나다.

개인조차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집단이 30년 동안 해 오던 관행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임투 2년 주기를 전면 도입하는 게 불편하다면, 가령 금속노조 일부 사업장 또는 일부 지역에서 선도적으로 시범운영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아니면 사무금융연맹은? 화학섬유연맹은? 보건의료노조는?

1년은 ‘임단투의 해’로, 1년은 ‘연대의 해’로!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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