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나이 스물여섯에 들어와 밤잠 안 자고 키워 놓은 회사가 희대의 사기꾼 손에 풍비박산됐네요. 반드시 되돌려 놓고 싶습니다."

썬코어가 몸살을 앓고 있다. 김대중 정권 최대 게이트 사건의 장본인인 최규선씨가 2015년 회사를 인수한 지 2년도 안 돼 생산공장이 멈췄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섰다. 법원·검찰청·국회·산업은행 앞에서 "기업사냥꾼 최규선의 경영권을 박탈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썬코어 경영정상화 촉구 결의대회'에서 만난 썬코어노조 여성부장 천선옥(57·사진)씨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눈매로 "내 손으로 키운 회사를 망하게 놔둘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 크는 재미에 밤낮 잊고 일했는데…"

천씨는 1986년 10월26일 경기도 부천 소명사거리 주택가 지하실에 있던 ㈜한도양행(썬코어 전신) 공장에 첫발을 내디디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일요일이었는데도 기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남의 건물 지하에 사글세를 내고 공장을 돌릴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그래도 수입에만 의존하던 오일리스 베어링 국산화에 성공해 사세를 키워 가던 경쟁력 있는 회사였다. 구매업체들이 불량품으로 빼놓은 물건까지 가져갈 정도로 오일리스 베어링이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시기였다. 스무 명 남짓한 노동자들은 "셋방살이 말고 우리 공장 하나 세우자"는 꿈 하나 가지고 밤낮없이 일했다. 천씨는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와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했지만 회사 크는 재미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회고했다.

같은해 12월 한도양행은 한도정밀㈜로 이름을 바꿨다. 이어 96년 ㈜루보로 사명을 변경했다. 잘나가던 대기업들이 줄도산하던 외환위기 시기에 루보는 인천 남동공단에 공장을 세웠다. 2001년에는 코스닥에 상장까지 했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은 짧았다. 2007년 다단계기업 제이유그룹 부회장까지 낀 1천500억원대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작전세력들은 2007년 초 2천원도 안 되던 루보 주가를 4개월 만에 5만원대로 끌어올렸다. 그해 4월 검찰이 작전세력을 수사하면서 주가는 한 달 만에 3천원 밑으로 떨어졌다. 개미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회사 지분구조도 흔들렸다. 대주주와 대표이사가 계속 바뀌었다. 10년이 넘는 지긋지긋한 경영권 분쟁의 시작이었다. 2009년 ㈜제다로 사명이 바뀌었을 때 직원들은 냉소했다.

"우리끼리 그랬어요. '죄다' 쓸어 가려고 '제다'냐고요."

"기업사냥꾼들 대한민국에서 격리시켜야"

제다가 2011년 ㈜루보로 다시 이름을 바꾼 뒤 취임한 김봉교 대표이사는 직원들에게 "자신을 믿고 따라와 달라"며 안정적인 지분확보와 매출증대, 설비투자를 약속했다. 남동공단에서 경기도 파주로 공장을 이전한 것도 이때다. 그러나 약속한 투자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전비용을 포함해 부지매입과 건물 건축 금액을 산업은행에서 차입했다. 차입경영은 자금압박을 초래했다.

천선옥씨는 "자기(대표이사)를 믿으라고 해서 믿었는데, 경영이 어렵다며 최규선한테 지분을 팔고 나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루보 지분을 확보한 최규선은 자신의 이름 중 '선'을 따서 사명을 썬코어로 바꿨다. 최씨의 먹튀 행각으로 썬코어와 직원들의 처지는 지금에 이르렀다.

"요즘은 이런 생각도 들어요.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키워 놓은 게 바보짓이 아니었나 하고요. 못된 놈들이 달려들어 갉아먹잖아요. 멀쩡한 기계들이 녹스는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지만 우리는 진짜 일하고 싶어요."

천씨는 정부에 썬코어 경영이 정상화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내일모레면 예순 살인데요. 몸도 아프고 그냥 나가고 싶기도 하지만 내가 회사를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나 하는 마음 하나로 열심히 투쟁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최규선 같은 기업사냥꾼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활개 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 주세요. 그게 제 바람입니다."

천씨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쭉 뻗으며 "투쟁"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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