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1892년 미국 전역은 파업으로 몸살을 앓았다. 뉴올리언즈 총파업과 테네시 석탄광부 파업에 이어 버팔로 철도 파업, 아이다호주 코들레인의 구리광산 파업이 있었다. 코들레인 파업에는 총격전이 벌어져 많은 사상자가 났다. 주 방위군에 연방군까지 추가됐다. 결국 파업은 실패했다.

1892년 초 피츠버그 옆 홈스테드에 있던 앤드루 카네기의 철강공장은 잠시 헨리 프릭이 대리경영했다. 공명심에 눈먼 프릭은 임금을 삭감하고 노조를 파괴하려고 했다. 프릭은 공장 주변에 3미터60센티미터 높이의 울타리를 5킬로미터나 치고, 꼭대기엔 철조망을 치고 감시탑도 만들어 총을 든 보초를 세웠다. 프릭은 임금삭감에 저항하는 노동자 전원을 해고했다. 유명한 탐정 앨런 핑커턴이 세운 ‘핑커턴 탐정단’이 구사대로 들어와 파업을 파괴했다.

3천명의 철강 노동자가 1892년 6월30일 공장 점거파업에 들어갔다. 핑커턴 탐정단은 그해 7월5일 밤 농성 노동자를 습격해 하루 종일 총격전을 벌였다. 7명의 노동자가 살해됐다. 주지사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민병대를 투입했다. 파업 노동자 160명이 투옥됐다. 넉 달 동안 이어진 파업에도 카네기의 철강공장은 대체근로 덕분에 팽팽 돌아갔다. 결국 노동자들은 임금삭감과 노동시간 연장을 받아들였다.

한겨레신문은 홈스테드 파업일인 6월30일자 2면에 카네기와 당시 파업을 소개했다. 한겨레신문엔 어린 시절 가난했던 ‘철강왕’ 카네기가 악착같이 번 돈을 자선사업에 쓰면서 자본가의 새로운 모범을 보였다고 기술됐다. 과연 카네기가 선한 자본가였을까. 카네기에게 돈을 벌어 준 건 남북전쟁(1861~1865)과 1873~1979년 장기공황이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카네기와 JP모건·록펠러는 철도부설권을 얻기 위해 의회에 마구 뇌물을 뿌렸다. 1만명의 중국인 노동자와 3천명의 아일랜드인이 캘리포니아에서 동쪽으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록키 산맥을 넘어 철도를 닦았다. 이들은 남북전쟁에 나선 군인들과 맞먹는 희생을 치렀다. 남북전쟁이 터졌을 때 26세에 불과했던 카네기는 엄청난 수수료를 받고 철도채권을 팔아 백만장자가 된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였다. 철도채권을 팔면서 카네기는 피츠버그 철광산과 철도산업에 주목했다. 뇌물로 먹고 살던 연방의회는 미국 천연자원의 절반을 이들 신흥 재벌에게 넘겼다.

장기공황은 1873년 9월 필라델피아의 제이 쿡 은행과 노던 퍼시픽 철도가 파산하면서 시작됐다. 공황은 6년 넘게 노동자를 집어삼켰다. 1877년 미국 실업자수는 300만명에 달했다. 전체 노동자 5분의 1이 일자리를 잃었다. 임금은 45%나 줄었다. 카네기와 모건·록펠러는 한몫 잡기엔 공황 같은 혼란이 좋다고 의견을 모았다. 전쟁이 끝나고 공황이 시작되자 카네기는 재빨리 거대한 철강공장을 세워 값싼 원료와 노동력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공황이 끝나자 카네기는 ‘철강왕’에 등극했다. 1892년 홈스테드 파업은 카네기의 앞길을 가로막는 작은 장애물에 불과했다.

홈스테드 파업은 아나키스트 알렉산더 버크먼의 암살시도로도 유명하다. 파업이 4주차에 접어들었던 1892년 7월23일 버크먼은 프릭을 총으로 쐈다. 형편없는 솜씨의 버크먼은 프릭을 죽이지도 못했고, 파업에 우호적이던 여론만 반전시켰다. 최근 한국엔 아나키스트를 다룬 영화 <박열>이 개봉됐다. 1923년 21살 청년 박열은 일왕 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돼 22년 옥살이 끝에 해방과 함께 석방됐다. 딱 여기까지가 좋았다.

박열은 해방 후 이승만의 부름을 받고 귀국할 때 9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를 갖고 와 여러 우익단체를 만들었다. 다이아몬드는 일왕 약혼 때 영국 왕실이 선물한 것이었다. 이승만과 두 차례 면담한 박열은 47년 10월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다. 박열이 한국전쟁 때 납북되자 당시 동아일보 박성환 기자는 사라진 다이아를 추적한 끝에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홈스테드 파업 때 뉴욕타임즈는 실업자가 된 노동자를 ‘게으른 공산주의자’로 매도했다. 우리 언론은 뉴욕타임즈와 얼마나 다를까.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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