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너무 느려 빠진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대표적인 명언이다. 최근에는 한승헌 변호사가 4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고서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인용했다. 1975년 정권이 조작한 필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른지 무려 42년. 무죄로 확인된 것은 다행이지만, 무죄가 선고되고 국가가 금전배상을 한다 한들 과연 정의가 회복됐다고 할 수 있을까.

노동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똑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승헌 변호사 말씀은 그동안 너무나 익숙해져 무뎌져 버린 오래된 감각을 깨웠다.

소송에 걸리는 시일이 길어져만 간다. 노동위원회를 거쳐 온 해고사건인데도 2~3년이 지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대법원까지 간다면 4~5년도 금세다. 해고를 당한 노동자 입장에서는 애간장이 녹아내리고도 남을 시간이다.

정말이지 있어서는 안 되는 슬픈 일이지만 가끔은 소송이 진행되는 중 당사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임금청구 사건이라면 상속인이 소송수계신청을 해야 한다. 말로 다하기 어려운 그 씁쓸함이란, 경험한 자만이 알 것이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법률구조 시스템의 모습은 이러하다.

바꿔야 한다. 나름의 기대로는 이번 정부에서 구조 제도 전반에 대한 공약이 나오길 기대했다.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공약집'에서는 이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다행히 이미 다양한 해소방안이 깊이 연구돼 있어 사회적 합의만 거친다면 제도화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노동사건 구조 제도 개혁 정점에 노동법원이 있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사건 당사자인 노동자나 사용자는 법원이 내린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 더 깊은 원인으로는 법원의 전문성과 능력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노동사건만 전담으로 하는 법관과 그 보조인이 판단한다면 판결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높아질 것은 당연하다.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차별, 원청을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및 단체교섭, 통상임금 재산정에 다른 체불임금, 창구단일화 및 공정대표의무 위반 등 이런 유형의 사건은 최근 10여년 사이 급증했다. 그 이전에 볼 수 없을 만큼 어려워지고 다양한 사건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사건은 그야말로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게 중론이다. 파산·특허·세무 등과 같은 수준이다.

현행 제도는 실제 구조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장기간의 소송에는 경제적인 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노동법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법원에서 신속한 판단을 기대하기란 어렵지 않겠나. 기우겠지만, 엄격하고 분명한 법리를 알지 못하는 경우라면 사측의 물량 공세에 흔들릴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깊이 있고 명쾌한 법원(法源)에 기초한 법원(法院)이 내린 판결에 의문을 달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법정의라고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돌아보면 노동법원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와 설치방법에 관한 내용은 참여정부 때도 검토됐다. 안타깝지만, 정책이 단절되고 말았다. 단절을 뛰어넘어 빠른 시일 내 결실이 맺어지길 기대한다.

아울러 노동사건 구조의 또 하나의 큰 축인 노동위원회도 크게 개혁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노동법원을 설치하고 노동위원회는 그 기능을 축소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마도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위해 설치된 노동위원회가 도리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한 아픈 경험을 많이 한 탓이리라. 그러나 이는 제도의 원래 목표를 버리고 자의적으로 운영한 까닭이다.

마땅히 노동위원회 제도는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 핵심은 역시 독립성이다. “노동관계에 관한 판정 및 조정(調整) 업무를 신속·공정하게 수행한다”는 노동위원회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노동부에서 노동위원회를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독립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방식의 운영 틀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법원과의 교류나 협업이 가능할 정도의 인적구성과 운영에서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오랜만에 사회 전반에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큰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이 잦아들기 전에 ‘사법정의’라 부를 만한 단단한 기초가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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