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은 사회적 낙인이 돼 현장과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다. 비정규직이 된 것은 왜곡된 고용구조 때문이며 비정규 노동자들은 피해자인데도, 사회는 능력이 없어 비정규직이 된 것인 양 비정규직에게 책임을 돌린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도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 돼 저임금과 고용불안정, 차별에 시달리는 사회가 어떻게 정상일 수 있는가. 그러나 왜곡된 사회구조를 들여다보지 못하면 자학을 하거나 사회적 약자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불만을 쏟게 된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다가도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기득권자들의 일갈에 눌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약자에 대한 폭력이나 묻지마 범죄가 그래서 확대된다. 세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고 왜곡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기득권자들은 시민과 노동자들이 현명해질까 걱정한다. '헬조선'을 정신적 승리로 이겨 내라는 주문을 거부하고 '헬조선'을 바꾸기 위해 싸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득권자들은 언론을 장악해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고, 문화·예술과 소위 '불온서적'을 검열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비판적 시선을 가로막아 왔다. 현실에 대한 비판은 모두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왜곡된 논리가 '이적표현물'을 양산해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가닿지 못하게 한다. 그 정점에 국가보안법이 있다. 1948년 일제 치안유지법을 근간으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양심을 법정에 세우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고민을 멈추게 만들었다. 촛불항쟁으로 사회의 근원적인 변화를 요구하게 된 지금, 87년 6월 민주항쟁에도 사라지지 않은 국가보안법을 문제 삼을 때가 됐다.

2002년 '노동자의 책'이라는 사이트가 개설됐다. 누구라도 이 사이트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다. <자본론>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분석하는 틀을 제공하는 책, <러시아혁명>처럼 노동자들의 투쟁과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들만이 아니라 <국부론>이나 <세계사편력> 등 '고전'이라고 불리는 많은 책이 '노동자의 책' 사이트에 담겨 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해 왔던 이진영씨는 이 공간이 '비판적·변혁적 사상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필요한 자료나 정보를 손쉽게 얻고 교환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공부하기를 원하며 4천권에 가까운 책을 스캔해 올려 아카이빙한 이진영씨의 노고에 감사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지금이야말로 노동자들이 공부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진영씨는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있다. 검사는 '노동자의 책'에 올린 책의 1.6% 정도가 '이적표현물'이라며 기소했다.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적이며 변혁적인 사상을 공부하고 공유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던 이 노동자는 졸지에 '이적행위자'가 됐다. 검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의식화를 조기 차단할 필요성이 대단히 크다'고 주장했다. 구치소에서도 이진영씨를 서신검열 대상자로 지정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지만 검사는 '배심원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반대했다. 맞다. 두려워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출간된 책들이 공유됨으로써 노동자를 의식화하고 배심원마저 오염시킬 것이라는 주장 이면에는 더 많은 이들이 '생각'을 갖고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될까' 두려운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더 많은 사상을 접해야 한다. 지금의 '비정규직체제'를 뒷받침하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는 얼마나 허술한가.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는 얼마나 비인간적인 체제인가. 파괴와 억압과 쥐어짜기로만 그 위기를 견디며 점차 위기가 깊어 가는 이 자본주의는 얼마나 취약한가.

자본주의는 역사적 산물이기에 언제라도 새로운 체제로 교체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이런 변화를 위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실험하며 싸우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에 기대어 '공부하는 노동자'가 늘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검찰이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이진영씨는 석방돼야 하고, 국가보안법은 이만 사라져야 한다.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많이 싸우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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