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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질병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폐병으로 죽어 간 광부들에게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각종 직업병은 무엇 때문인가. 이런 의문에 처음으로 답한 사람은 이탈리아 의사 베나르디노 라마치니였다. 그는 1700년에 발간한 <직업인의 질병>이란 책에서 "노동자 질병은 직업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덧붙여 “의사는 노동자의 집을 방문하면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늘날 다시 묻는다. 노동자의 질병은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가.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나름북스·사진)은 이 물음에 대한 여실한 기록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불편하다. 왜냐하면 소개된 모든 사건이 한국 사회 직업병과 노동자의 슬프고 또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정확하게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4장으로 나눠진 이 책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산재사건을 조명한다. 제일화학 노동자의 석면, 진폐 노동자, 청구성심병원 집단 산재사건, 두원정공 노동자의 근골격계질환 등이다. 2·3장에서는 지금도 진행 중인 노동자들의 위험한 현실과 직업병 사건을, 4장에서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발생한 수은중독,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 그리고 현장실습생들의 과로사와 자살을 기록했다.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탄압으로 발생한 정신질환이 현재 유성기업 노동자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2004년 발생한 태국 노동자의 노말헥산(헥세인) 중독사건은 지난해 파견노동자에게 발생한 메탄올 집단중독과 하청노동자 수은중독 사건과 그 본질이 다르지 않다. 10년 넘은 반올림과 피해노동자, 가족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올해 초 발생한 고 홍수연양의 죽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장실습생의 노동조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2003년 두원정공 노동자들의 골병은 오늘날 조리급식 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질환의 모습과 동일하다. 감정노동과 과로사와 자살은 현재 진행형이고,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과 원청 사업주의 산재 책임, 기업살인법 제정 같은 권리보호 제도는 아직도 요원하다.

이 책은 불편한 현실과 저열한 제도에 맞서는 직업환경의사들의 고군분투기, 그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자 이상관의 죽음에 맞서는 투쟁과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활동가 남현섭에 대한 기억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새로운 길과 아픔을 전해 준다. 스물세 살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직영업체에 고용되기 위해 쉬지도 못한 채 결국 열사병으로 숨진 사건은 ‘직업환경의학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보여 준다. 또한 현장실습생에 대한 착취상황, 메탄올 중독 사망사건, 작업중지권 필요성을 짚은 대목에서는 파견과 외주화로 점철된 불안정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제도적 모순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불편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계 최장의 장시간 노동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자살률·산재사망률을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현장은 불편한 현실이다. 함께 나아가고, 연대하고, 좀 더 고민해야 한다. 그게 한국의 불편한 노동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단초라고 저자들은 얘기하고 있다. 라마치니의 고민과 열정을 가지고, 불편한 노동현장과 마주 선 이 책의 저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할 뿐이다.

권동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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