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결국 폐지됐다. 성과연봉제 폐지의 반면교사를 찾는다면 구성원의 수용성이 낮은 제도 변화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임금체계 개편논의는 기존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제도주의 입장을 취하는 캐슬린 실렌(Kathleen Thelen)은 제도 변화가 외부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내생적 요인의 점진적이면서 질적인 변화를 분석한다. 점진적 변화 양식은 대체(displacement)·병치(layering)·표류(drift)·전환(conversion)이다. 네 가지 양식의 점진적인 변화가 누적되면서 변혁적인 결과(transformative results)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임금체계 논의는 대체로 급격한 변화에 치중됐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임금체계는 직무급과 직능급이다. 그런데 노조는 직무급이니 직능급이니 하는 개념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인다. 직무급과 직능급이 기존 연공급 임금체계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노조의 부정적인 반응이 크면 임금체계 개편은 성공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수용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임금제도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실렌의 관점은 유용하다. 임금체계 개편은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당사자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독일 금속노조가 ERA로 개편하는데 13년, 일본의 도요타가 연공급에서 직능급으로 개편하는 데 14년이 걸렸다. 특히 임금은 생계비와 연동되기 때문에 노동자는 임금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임금은 비용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커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임금체계 개편 과정에서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가 노조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필자는 점진적 변화의 단서를 수당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다수의 임금 연구는 연공급 비중이 큰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비합리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나라 임금체계에 합리성 요소가 상당히 내재돼 있다고 본다. 다만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되는 문제는 크다. 여기서 말하는 임금체계는 임금을 결정하는 원리를 의미한다. 필자가 보는 합리성 요소는 수당이다. 우리나라 임금체계에서 수당이 발달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수당이 결정되는 원리와 개인 간 격차에 관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 개인 간 격차를 알 수 있는 임금정보가 매우 제한적인 탓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의 수당을 살펴봤더니 수당 종류가 많아 매우 복잡하게 보이지만 직무 차이와 개인 능력 차이에 따라 수당금액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결정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A자동차 공장에서 조립직무 종사자와 물류직무 종사자가 받는 수당과 금액을 비교해 보자. 조립직무 종사자는 라인수당, IDC(incentive direct conveyor)수당, TCA(trim chassis assembly)수당을 받는다. 두 수당을 합쳐 18만8천원이다. 물류직무 종사자는 라인수당과 지게차수당을 합쳐 7만원을 받는다. 조립직무 종사자보다 11만8천원이 적다. 이런 차이는 조립직무와 물류직무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직무환경과 노동강도 기준에 의해 적용대상이 구분된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의 수당은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된다. 수당의 종류와 금액이 노조 교섭력에 좌우되는 까닭이다. 노조 내부에서도 수당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종류가 많고 복잡해서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다. 수당 신설이 직무 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노조 교섭력으로 결정한 결과 공정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체계 개편논의를 수당 문제 해결과 연동할 수 있다면 점진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직무 관련 수당에 적용하고 있는 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면서 기존 연공급 임금체계와 병치(layering)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기존 임금체계를 직무급이든 직능급으로 급격하게 바꾸기는 쉽지 않다. 급격한 변화는 구성원들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점진적 변화가 구성원 수용성을 높이고 노사 갈등을 줄이면서 제도의 안정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이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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