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귄위주의 국가는 인구성장을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이 경제발전에 헌신하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려 했다. 중간계급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 소유와 자산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고 그들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했다. 이런 상호혜택 구조 때문에 한국의 도시 중산층과 중간계급 일반이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하층계급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프랑스 여성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2007년에 낸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의 한 장면이다.

그녀는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녀는 1993년 처음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연구하기로 결정하고 강남 아파트단지에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2004년과 2006년 재조사를 거쳐 나온 <아파트 공화국>은 오랫동안 아파트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회피해 온 한국의 지식인들과 건축가들을 집중 겨냥했다.

지식인들이 아파트 문제를 회피만 해 온 건 아니다. 여성학자 이효재는 이미 오래전에 “신수동 아파트 주민들이 자신의 생활수준을 이웃의 호기심이나 판단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효재 교수는 60년대 마포 개발에 천착해 아파트 주민들을 조사했다. 한국에 아파트 문화가 처음 시작될 시점부터 연구자들은 아파트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연구자의 눈매는 무뎌졌고, 결국 수도 서울의 강남에 군대 막사처럼 줄지어 선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용인하고 말았다.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은 완벽하지 않은 책이다. 아파트 소유자와 세입자를 구분하지 않고 진행한 인터뷰는 소유자와 세입자의 갈등을 읽어 내지 못했다. 2004년과 2006년 재조사를 통해 98년 외환위기 이후 아파트단지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밝히겠다고 했지만, 책 어디에도 외환위기 전후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했다. 권위주의 정부가 재벌과 손잡고 급격한 성장을 추구하면서 만들어 낸 한국형 발전모델의 ‘압축적 표상’이란 상징적 언어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곳곳에 역사적 오류도 보인다. “70~75년까지 한국은 인구 10만명 이상 40여개 도시와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 등 100만명이 넘는 7개 대도시에 전체 인구의 50%가 집중됐다”는 표현은 한국인이라면 굳이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내용이다. 75년 울산의 인구는 겨우 30만명을 넘었고, 줄레조가 말한 7개 대도시도 95년에서야 태어났다. 오히려 누구나 느끼는 수도권 인구 집중을 읽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권위주의 정권이 아파트를 통해 중산층, 더 정확히는 자신에게 투표할 블록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읽어 냈다는 데 있다. ‘도시는 야당을, 농촌은 여당을’ 찍는다는 고전적 명제를 뒤집고 인구가 훨씬 더 많아질 도시 주민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도록 이미지 정치를 완성해 가는 모습을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 건설에서 찾아냈다.

강남구청이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가 가져온 ‘49층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또다시 서울시에 제출했다는 소식을 조선일보 6월29일자 경제섹션1면에서 접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강남구청은 이번 ‘49층 안’이 “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 언론은 개발연대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 제목을 ‘은마아파트의 뚝심’이라고 달아 그들의 호기를 부추겼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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