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어도 노동자들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노량진역에서 한 철도노동자가 작업 도중 열차에 치여 숨졌다. 지난달 27일 광운대역에서 철도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지 한 달여 만이다. 지난달 1일에는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이 무너져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철도·건설 현장과 조선소에서 일어나는 중대 재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같은 업종·작업장에서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원인은 비슷하고 사업주들은 같은 대책 내놓기를 반복한다. 그렇지만 현장은 바뀌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새 노동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가 곱씹어야 할 노동안전보건 대책은 무엇일까.
 

김선욱 철도노조 미디어소통실장

충분한 시간·인력 없으면 사고 반복돼
김선욱 철도노조 미디어소통실장

이번에 사망사고가 일어난 영등포시설사업소는 2005년 13명이던 정원이 줄어 현재 9명이다. 실제 일하는 현원은 8명에 불과하다. 사고 당일 한 분이 연차를 써서 7명이 작업을 했고, 고인은 열차감시업무를 맡았다. 1호선 서울역에서 금천구청역까지는 선로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열차운행 횟수가 많다. KTX·새마을호·무궁화호·화물열차·전동차가 24시간 쉴 새 없이 다니는 구간에서 28일 0시13분 작업자들은 곡예 같은 작업을 해야만 했다. 고인은 25년 경력의 베테랑이었지만, 죽음을 피할 순 없었다.

올해 초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제3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에 따르면 2015년 기준 0.796명인 철도시설 1킬로미터당 유지보수 인력이 2020년까지 0.676명으로 줄어든다. 사고율을 줄이겠다면서 필요한 인력까지 줄인다는 모순적인 발상이다. 작업할 시간과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노동자는 물론 시민의 안전도 담보될 수 없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작업자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열차운행을 차단하지 않고 작업하는 이상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고용노동부가 영등포시설사업소에 열차운행선상에서 작업을 금지하는 작업중지명령을 내린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다.

대다수 철도노동자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작업환경에서 노동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철도공사를 신의 직장, 직원들을 철밥통이라 부른다. 이 철밥통들은 “일하다 다치면 최소한 불구고 기본이 사망이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하곤 한다. 철밥통들이 이토록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누가 알아줄까.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하청노동자 원청 산업안전보건위 참여 강제 필요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최근 노동현장 안전사고 대부분은 하청노동자 위주로 발생하고 있다. 위험한 업무는 간접고용 외주화를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면적인 도급 금지는 쉽지 않다. 하청업체 산업안전에 대한 책임을 원청이 지도록 하는 대책이 동시에 병행돼야 한다.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원·하청업체 간 산재예방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원청이 원청 직원 위주로 대책을 수립하다 보니 하청노동자들은 배제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장 산재 예방대책이나 조사에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원청은 산재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원청 직원과 하청 직원 사이에는 보호구조차 차별이 존재한다. 하청업체가 하청노동자에 대해 안전관리 의무를 성실히 할 수 있도록 도급계약시 원청이 안전관리비를 하청에게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

사고 후 대책도 절실하다. 하청노동자가 산재를 당해도 원청은 책임지지 않고 빠져나가고 있다. 책임을 묻지 않으니 산재예방 대책을 성실히 이행하지도 않는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하청노동자 산재 발생시 원청 최고책임자나 법인에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제정이 필요하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

살인기업 처벌 강화해야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

철도노동자가 선로작업 중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에 이어 또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동안 철도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측은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떠들어 댔다. 그러나 대책 마련은커녕 여전히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있는 현실을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재 사망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에서는 해마다 최악의 살인기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기업의 반성과 개선은 찾아볼 수 없다. 같은 기업이 반복적으로 최악의 살인기업에 선정되고 있는 뻔뻔한 현실이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업주가 이윤추구에 눈멀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보호를 위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한 살인행위다. 반복되는 노동자 사망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기업을 ‘살인기업’으로 규정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이미 영국·호주 등 선진국들은 노동자 산재 사망을 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고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지금의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는 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다. 우리나라도 노동자들이 반복되는 죽음의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루빨리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야 한다.
 

권동희 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안전보건 인력 확보하고 산업안전보건청 신설하자
권동희 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 내 안전보건 인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안전보건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기업규제완화법) 때문이다. 이 법에 의해 사업주는 안전관리 인력을 고용하지 않거나 겸직 또는 외부위탁할 수 있다. 최소한 안전 영역에서는 특별법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인력확충 운운하는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둘째 산재사고를 철저히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높은 산재사망률에 비해 낮은 산재발생률 통계는 정부 스스로도 신뢰하지 않는다. 재해발생 통계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현장의 산재은폐는 이어진다. 현재의 재해통계는 실제 발생하는 재해의 4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사업주의 산재은폐에 눈감는다면 중대재해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셋째 사업주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안전에 대한 투자와 노력 없이는 기업의 존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업장에서 애사심과 노력은 기대할 수 없다. 중대재해 사업주를 적극적으로 처벌하는 법률의 제·개정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사업장 내 안전보건을 책임질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이 필요하다. 사업장 내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일관된 원칙과 방향을 가지고, 전문적인 행정업무를 펼칠 수 있는 독립된 기구가 필요하다.
 

현재순 일과 건강 기획국장

대형 화학사고 예방, 화학물질 알권리 보장부터
현재순 일과 건강 기획국장

화학사고는 작업장 노동자들은 물론, 지역주민의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한다. 한 번 터지면 중대재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12년 구미4공단 휴브글로벌 불산누출 사고는 우리나라의 사업장 화학물질 관리와 사고시 비상대응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대표적인 화학사고다. 노동·사회단체는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를 구성하고 4년간 ‘화학물질관리와 지역사회 알권리’ 법과 조례 제정운동을 펼쳤다. 계속된 화학사고는 정부와 정치권에 법 제정 필요성을 더욱 압박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5월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일부나마 노동자·주민의 참여로 ‘화학물질 안전관리 알권리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개정되기 전인 2015년 5월 인천시 조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5개 지자체가 일명 ‘알권리 조례’를 제정했다. 하지만 수원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례가 사고 이후 여론무마용으로 급하게 만들어지면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최근 발생하는 화학사고 대응 과정은 여전히 매뉴얼 부재상황을 보여 준다. 매년 100여건의 화학사고 피해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법과 조례가 사문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사회단체와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환경부가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의 의견을 대부분 반영한 표준조례안을 올해 3월 전국 지자체에 내려보냈다. 전국 지자체는 하루빨리 조례 제정에 나서야 한다. 사업장 위해관리계획서를 포함한 사업장 화학물질 배출량·취급량을 알기 쉽게 노동자들과 주민들에게 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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