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조업 노동계는 흥미로운 제안들을 했다. 제조업 부활을 위해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는 것과 격차 해소를 위해 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이다. 전자는 지난 28일 공식 출범한 양대 노총 제조연대가 주장한다. 후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부들이 최근 제안한 사안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안들은 임금교섭과 구조조정 반대에 힘을 실었던 제조업 노동운동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까. 주로 ‘방어와 저지’에 쏠렸던 제조업 노사의 임단협 풍경은 바뀌는 걸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양대 노총 제조업 노동계가 한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소속 상급단체가 다르고 기업별로 단체교섭을 하는 양대 노총 제조업 노동계는 뭉치기 힘들었다. 상급단체별로 사회적 대화기구에 대한 접근도 달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해 활동했던 양대 노총 제조업 노동계는 다시 뭉쳤다. 이들의 요구는 임금을 올려 달라는 것이 아니다. 노사정이 함께 ‘제조업 부활’을 모색하는 것이다. 격차 해소는 물론 일자리 창출 및 보호를 꾀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제조산업협의회라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해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앞으로 대통령 직속기구인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4차산업혁명위원회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계획이다.

양대 노총 제조연대는 산업 차원의 사회적 대화와 기업 차원의 참여 확대를 주장한다. 그래서인지 제조연대 내에서는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임금 위주의 단체교섭에서 벗어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좋은 일자리”라는 슬로건이 제안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민주주의를 강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금속노조와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부의 제안은 일자리 연대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통상임금 소송전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노사가 공동교섭을 통해 통상임금 문제를 풀자는 것이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통상임금을 해결하되 그 재원의 일부를 일자리기금으로 조성하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금속노조는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재원 규모와 조성 방식, 쓰임새를 논의하자고 주장한다.

금속노조는 과거에도 격차해소를 위해 연대기금을 제안한 바 있다. 당시에는 산별노조 차원에서 제안했다. 이번에는 특정 재벌대기업에게 일자리기금 조성을 제안한 것이다. 그것도 통상임금 소송전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안했다. 때문에 유사한 맥락에서 통상임금 소송을 하는 사업장의 갈등 해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응할 경우 수년 동안 금속노조와 현대차계열사 지부들이 요구한 공동교섭이 이뤄진다는 의미도 있다.

제조업 노동계가 쟁점으로 부각한 사안을 고려하면 새 정부 출범 후 변화가 느껴진다. 제조업 부활부터 일자리 창출과 통상임금 소송전 해결까지 다양한 이슈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금교섭 위주의 제조업 단체교섭 풍경이 바뀔 수 있을까. 현재로선 변화를 예상하는 것은 섣부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제조업 노동계의 제안에 정부와 사용자측이 화답하지 않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통상임금 소송 중이라 임금 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금속노조의 일자리연대기금 제안을 일축했다.

물론 제조업 노동계도 상급단체의 경우 제조업 부활이니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을 제기하지만 기업별노조(지부)의 경우 임금 위주의 단체교섭에 치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급단체와 기업별노조(지부)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결국 노사가 공중전을 벌이는 가운데 정부는 뒷짐을 졌던 과거 풍경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꽉 막힌 형국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현재로선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본다. 새 정부에 대한 노동자의 기대치가 높은 반면 사용자의 반발도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으면 임단협 갈등은 격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주주의를 강조한 만큼 좀 더 적극적으로 노사를 중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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