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수첩 따위가 한때 저들의 연장이었으나 이제 랩톱 컴퓨터가 대신한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무선 인터넷망은 편리했지만, 저들의 꿀맛 같은 휴식을 앗아 가곤 했다. 든든했던 온갖 핑곗거리는 더는 통하지 않았다. 멍 때리기는 사치스러웠다.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종이책을 읽는 건 미래의 상이었다. 기자회견의 주요 발언을 받아 치는 틈틈이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선배의 독촉 메시지에 즉각 답해야 했다. 타닥탁탁 모닥불 타는 소리 따라 손가락이 바빴다. 절절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뜨거워진 노트북 펼쳐 놓고 열정을 사른다. 주저앉으면 거기가 일터다. 유목민의 삶을 닮았다고 해서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한 노동 행태 중 하나란다. 애초 삶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속보 마감 독촉에 시달리는 저들은 디지털, 노땡큐라고 부를 법하다.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이메일함에 담긴 보도자료엔 주장과 맥락과 근거가 충분히 담겼지만, 그 말투와 표정과 함성과 눈물 따위는 거기 없어 기자들은 컴퓨터 품고 현장엘 간다. 사연 많은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오늘 또 현수막이며 팻말 따위 ‘연장’을 챙겨 들고 땡볕 아래 선다. 세종대로와 국회대로 곳곳에 천막 치고 산다. 오랜 방식이다. 최신의 디지털 엘이디 조명을 갖고도 사람들은 종종 촛불을 켠다. 장밋빛 디지털 세상의 가시 돋친 풍경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