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인정받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중소 영세사업장일수록 노동자들의 사용자 눈치 보기가 심하다. 사용자들은 산재보험료율 인상과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강화를 피하기 위해 산재보다는 공상처리를 택한다. 최근에는 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법원이 업체 손을 들어줄 경우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는 공단에서 받은 1천여만원의 병원비와 요양급여를 반환해야 한다.

◇업무 연관성 놓고 이견=22일 민주연합노조에 따르면 평택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용역업체인 합자회사 서림환경이 지난해 12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림환경은 “화농성(종기가 곪아서 고름이 생기는 현상) 건막염은 일반적으로 발목을 접질리는 외상 이후에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며 “업무상재해로 판단한 최초요양불승인 취소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2013년 서림환경에 입사한 김아무개(43)씨는 지난해 4월25일 오전 상차작업을 하던 중 빈병이 담긴 봉투를 밟고 미끄러지며 왼쪽 발목을 접질렸다. 김씨는 나흘 뒤인 29일 병원에서 화농성 건막염 진단을 받았다. 부은 발목을 째고 고름을 뺀 김씨는 계속된 통증 때문에 같은해 5월1일 강선제거술과 활액막 절제술을 받고 3개월 요양한 뒤 8월 업무에 복귀했다.

공단은 지난해 6월 “화농성 건막염은 일반적으로 발목을 접질리는 외상 이후에는 발생하지 않는다”며 요양불승인 처분했다. 김씨는 재심사를 청구했고,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는 같은해 11월 산재 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최초 내원한 의료기관의 의무기록상 재해사실이 확인되고, 좌측 족관절 화농성 건막염은 외상 후 일정기간 지나 발현되는 것이 특징”이라며 재해로 인해 유발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회사는 “사고 직후 재해 사실을 보고 받은 적이 없다”며 “김아무개씨는 재해 발생 후에도 정상적으로 근무했고, 차량 블랙박스와 회사 CCTV 영상 자료에도 사고 흔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김씨가 사고 후 나흘 뒤 병원을 찾고, 다친 부위가 10년 전 사고를 당한 부위와 일치한다는 이유로 업무상재해와는 연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씨는 “과거에도 교통사고로 목 보호대를 하고 출근하자 사장은 ‘꾀병을 부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걷지 못할 정도의 증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통증을 참으며 일했다”고 반박했다.

◇“본질은 노조 탄압?”=회사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산재 승인을 받은 사람은 오직 김씨뿐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가 위험하다고 하지만 다치는 빈도는 적다”며 “업무 특성상 허리를 삐끗하는 정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영준 노조 평택지부 부지부장은 “압축기계가 달린 차량을 타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다”며 “눈이나 비가 올 때 미끄러져 청소차에 매달린 사람이 크게 다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동료들은 다쳐도 불이익을 당할까 봐 말을 못한다”며 “지난해 노동자가 차량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회사는 공상처리를 하고 수집·운반업무를 하던 사람을 선별장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실제 일하다 다쳐도 통상적으로 회사는 산재처리보다는 공상처리를 선호한다. 산재로 인정될 경우 산재보험료율이 인상되고 작업환경에 대한 노동부의 근로감독도 강화되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공상처리를 통해 치료비조로 금전보상을 한다.

회사 관계자는 “산재로 인정되면 보험요율이 올라가겠지만 회사에 민사상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산재신청이 안 될 경우 공상처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행정소송과 관련해 “재해 발생과정에서의 원인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배경에는 노조탄압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부위원장은 “노조 설립 이후 임금과 노동조건을 놓고 회사가 갈등을 빚어 왔다”며 “이번 행정소송도 산재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를 댔지만 근본적으로는 노조탄압을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세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회사가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산재 승인과 관련해 사측 실익이 없는 상황에서 행정소송까지 제기한 이면에는 단지 공단의 산재 인정에 대한 불복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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