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부가 노동시간단축 일자리 나누기를 추진하면서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 논의가 불붙고 있다. 세계 각국도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하려고 법·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과 <매일노동뉴스> 공동주최로 2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법정근로시간 토론회'에서 독일·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노동시간 관련 법제를 살펴봤다. 어떤 방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지, 우리나라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어떤 방향에서 이뤄져야 하는지 논의가 이어졌다.

독일, 연장근로·야간근로 하면
임금보상 대신 시간보상, 목표는 '건강권 향상'


독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실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2015년 생업종사자 1주 평균 노동시간은 35.6시간이다.

독일 노동시간법(Arbeitszeitgesetz)에 따르면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이다. 하루 2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6개월 또는 24주 단위로 변형근로를 허용하는데, 단위기간 내 1일 8시간을 넘지 않는 한 1주 최장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독일 노동시간법의 특징은 노동자 건강보호를 가장 중요한 입법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독일은 일요일과 법정휴일 근무를 엄격하게 규제한다. 노동시간법 9조1항에 "노동자는 일요일 또는 법정휴일 0시부터 24시까지 근로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일요일·휴일근로를 하거나 연장·야간근로를 한 노동자에게는 가산수당 같은 임금보상 대신 대체휴일을 부여한다. 임금이 아니라 시간으로 보상하는 것이다.

독일 사례를 발제한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장에서는 단체협약이나 사업장협정을 통해 가산수당 지급도 이뤄지지만, 금전이 아닌 시간으로 보상하도록 법적 원칙을 정해 장시간 노동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원칙적으로 일요일과 법정휴일 근로를 금지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가정생활과 문화생활, 공동체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한국이 휴일근로와 관련해 휴일근로수당 지급 외에 별다른 법적 제한을 두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노동시간 법·제도를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실상 무한 연장근로 가능한 일본
벌칙규정 포함 노동시간 상한 규제 나서


한국만큼이나 장시간 노동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일본도 최근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데다, 2015년 광고회사 신입사원이 살인적 업무량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논의가 급진전했다.

일본 노동기준법에 따르면 최장 노동시간은 주 40시간, 1일 8시간이다. 일본은 1980년대 주당 48시간이었던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98년 노동기준법 36조(36협정)를 손질해 노사가 합의하면 정부 권고기준 이상으로 연장근로 한도를 늘릴 수 있도록 했다.

노동기준법은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으로 규정해 놓고 있지만 36협정에 따라 현장에서는 '노사합의'를 이유로 사실상 무제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일본 사례를 발제한 최석환 명지대 교수(법학)는 "일본은 지금까지 유지된 노동시간 체제, 즉 36협정을 통한 노동시간 연장이 더 이상 곤란하고, 벌칙규정을 포함한 노동시간 상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3월 '일하는 방식 개혁실현회의'에서 36협정 특례로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월 60시간, 연간 720시간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한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노동기준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같은달 일본경제단체연합회와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는 기업문화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과로사·과로자살을 방지하기로 결의했다. 결의에는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 상한규제를 기본으로, 일시적 업무량 증가 같은 특정 경우에 한해 연간 720시간(월 평균 60시간) 이내, 휴일근로를 포함해 2개월 내지 6개월 평균 80시간 이내, 월 45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외근로는 6개월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최석환 교수는 "법·제도 개선 움직임과 더불어 후생노동성에 '장시간 노동 삭감 추진본부'가 설치돼 과중노동박멸팀·일하는 방식 개혁과 휴가취득 촉진팀이 과도하게 연장근로가 이뤄지는 사업장을 중점적으로 감독하고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노동자 집단 혹은 노동자 개인의 합의를 통한 시장 내에서의 노동시간 조정에서 적극적 규제를 도입하고 있는 일본의 실험이 어떤 식으로 구체화할지 관심이 모아진다"고 밝혔다.

"법정근로시간은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
근로기준법 50조 규범력 회복 주문


우리나라 국회에는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된다고 명시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근로기준법 50조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하루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53조는 "당사자 간 합의하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장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1주일 최대 68시간 원칙이 적용돼 왔다. 1주일은 7일이 아니라 5일이라는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이다. 주 12시간 한도로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에 휴일근로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 하루 8시간씩 총 16시간을 추가로 일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는 게 노동부 주장이다. 이를 바로잡아 주 52시간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도록 만들겠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 같은 노동시간단축 논의와 관련해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무소 새날)는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근기법 50조에 명시된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법정근로시간으로 인식해야지, 예외조항인 근기법 53조의 '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을 법정근로시간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다.

김 변호사는 "하루 8시간만 일하고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처벌된다는 해석을 통해 근기법 50조의 규범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조임영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프랑스의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검토'를 발제했고,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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