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하합니다. 이상목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의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말했다. 전화를 한 그가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이었다. 하이디스 정리해고 사건, 2015년 3월31일에 해고돼 2년 넘게 투쟁해 온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마침내 법원에서 해고무효라는 판결을 선고받았다. 지난 16일 오전 10시였다. 주인인 대만자본의 결정에 따라 사측은 생산라인을 가동해 봤자 적자만 발생하다며 공장폐쇄하고서 희망퇴직하지 않고 남아 있던 생산직 노동자들을 모두 정리해고했다. 그동안 사업장에서 내쫓긴 노동자들은 대만영사관이 있는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 건물 앞에서 수많은 날을 노숙농성 등 거리에서 투쟁하고, 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법원에 해고무효 소송으로 법적 투쟁을 해 왔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부터 중앙노동위원회까지 노동자들을 외면했다. 공장을 운영해 봤자 적자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용자 논리에 굴복한 기각 판정문만 쓰고 말았다. 이 생산직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가 있고 나서 2016년 1월 말에 그나마 임대 준 공장시설 관리를 위해 남겨진 노동자들마저 외주화하겠다며 정리해고했던 사건만 중앙노동위가 지난해 부당해고 판정문을 썼을 뿐이다.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실시를 자문하고서 정리해고 소송에서 사측을 대리했던 김앤장 변호사들과 오랜 법적 공방을 벌이고서 선고일이 잡힌 뒤에도 이번 판결이 나오기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1월에 선고할 수 있었던 판결이 2월로 선고하겠다고 하더니 6월9일로 미뤄졌고, 다시 일주일 뒤로 선고일이 연기되고서야 마침내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해고무효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으로 수원지법과 행정법원이 동시에 선고를 미뤄 왔던 것인데,우리는 해고무효 소송 판결을 먼저 선고받기 위해, 사측은 행정소송 판결을 먼저 받기 위해 연기신청서를 내고 빨리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재촉해 왔던 것도 더는 하지 않게 됐다. 해고무효라는 민사소송 판결로 이제 법적투쟁은 한 고개를 넘었다. 판결이 선고되고서 다른 말 없이 하이디스 조합원들에게 ‘축하한다’고 한마디만 하고 싶었다. 그리고서 나는 그들만 아니라 이 나라 모든 노동자를 위협하는 정리해고제도를 생각했다.

2.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7년 3월13일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다. 1996년 12월31일 개정된 근로기준법에서도 정리해고제도가 규정돼 있었지만(27조의2 내지 6), 이 법률은 국회에 날치기로 통과됐던 것이라 그 뒤 폐지됐다(1997년 3월13일 폐지). 물론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가 규정되기 전에도 정리해고가 실시됐고 그에 대해서 법원은 그 해고가 정당한지 판결했다.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제도 도입과 관계없이 정리해고는 이 나라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했다. 당시 날치기 통과 법률에 대한 노동자의 분노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총파업투쟁으로 전개됐는데, 바로 ‘노개투’ 총파업투쟁이었다. 정리해고제를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노동자들은 투쟁했다. 그리고 정리해고제도를 규정했던 근로기준법은 폐지됐지만 바로 근로기준법을 제정해서 정리해고제가 도입됐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되지 않고 정상적인 의결절차로 입법됐고, 그래서 더는 날치기법이라고 비난하며 투쟁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정리해고법은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 보호법인 근로기준법의 일부로 오늘까지 수많은 노동자의 고용을 위협하는 사용자의 무기가 됐다. 노개투 당시 정리해고에 관한 판례보다 그 요건을 대폭 완화해서 근로기준법에 도입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거대하게 분노했던 노동자들은 오늘 정리해고의 칼날 앞에 서 있다. 그러나 더는 정리해고에 분노해서 그 철폐를 외치는, 노개투와 같은 투쟁은 없다. 수많은 투쟁이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 현대차를 비롯한 수많은 정리해고 구조조정 저지투쟁이 있었고, 그 뒤 대우차·쌍용차·한진중공업 등 대규모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동자투쟁이 전개됐다. 사용자의 정리해고 실시에 맞서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사업장투쟁으로 전개됐다. 하이디스 정리해고는 바로 이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제도를 내세워 실시한 것이었고, 그에 따라 사업장에서 추방된 해고자들이 무효를 주장하며 투쟁해 왔다.

3. “해고 대상자 선정 말고 나머지 정리해고 요건은 모두 위반했다”고, 판결선고가 있던 날 오후 법원 출입기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판결문 등록은 2~3일이 걸려 입수할 수 없었다며 기자는 판사가 말해 준 판결요지라고 내게 전했다. 판결선고는 해고는 무효고, 복직시킬 때까지 임금을 지급하라는 주문만 말하고 재판장이 마쳤으니 판결문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판결이유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재판부가 긴박한 경영상 필요, 해고회피노력, 노조에 사전 통보와 협의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근로기준법 24조 정리해고 요건에서 공장을 폐쇄하고서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생산직 노동자를 해고한 것이고 누굴 가려 해고할 것은 아니니 해고 대상자 선정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하고 말 것은 없다고 판단하고서 하이디스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도 없이 해고회피노력도 다하지 않고 협약에 따라 노조와의 합의도 없이 한 것이니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 읽어 본 판결문에서는 그와 같이 판결이유가 적시돼 있었다. 당연한 판결이유였다. 결과가 나오고 나서 보면 당연하게 보인다. 모든 건 결과로 향하고 있다. 판결이 선고된 직후 해고자인 이상목 하이디스지회장은 "법원이 우리 손을 들어줘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법원 판단이 나온 만큼 회사는 하루빨리 해고자들의 고용에 대해 성실히 책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나는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말은 해고노동자로서 당연히 할 말이었다. 그는 정리해고가 있은 지 2년3개월이 다 돼서야 법원판결을 통해 해고가 무효라는 확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사정이 아니라 사용자의 사정을 이유로 사업장에서 추방된 그는 법원판결에 공장폐쇄한 사용자에게 빨리 고용에 대해 책임지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4. 촛불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노동관련 공약을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공약과 별개로 더불어민주당이 발간한 정책공약집도 있다. 비정규직 해소·노동시간단축·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노동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중에는 희망퇴직을 강요하는 행위를 근절시키겠다는 것도 있다. 그리고 정리해고에 관해서도 기업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 한정하고, 해고회피노력 및 정리해고자의 재고용을 의무화하겠다고 했다(정책공약집 353면). 정리해고 철폐는 아니더라도, 정리해고를 보다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것으로 나는 읽었다. 희망퇴직·명예퇴직 등 퇴직 강요가 문제되는 것은 그걸 하지 않으면 정리해고될 수 있다는 위협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제도가 도입된 이후 정리해고로 추방된 노동자보다 희망퇴직·명예퇴직 또는 권고사직 등 사직형식으로 퇴출된 노동자가 훨씬 많을 것인데, 이는 정리해고에 대한 위협 없이는 근본적으로 근절시킬 수가 없다. 그리고 사용자의 정리해고에 대한 위협은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를 철폐하지 않아도 적어도 보다 엄격한 제한을 통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자신이 공약한 희망퇴직 근절과 무분별한 정리해고를 규제하겠다는 공약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 이번 판결을 선고받은 이상목 지회장을 비롯한 하이디스 조합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약속을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2015년 하이디스 정리해고 직후에 국회에서 하이디스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즉각 철회하고 고용안정과 경영정상화를 촉구하고 함께 노력한다고 서명했으니 그걸 내세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하이디스 해고자들의 호소에 답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일이다. 그리고 하이디스를 넘어 이 나라 노동자에 대한 답변은 자신이 공약한 정리해고 규제가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의해 이뤄질 때 우리는 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가 감히 공약하지 않았던 정리해고 철폐조차 사실은 사용자에 대한 대단한 위협도 아니다. 근로자를 사용하겠다고 근로계약을 체결했으니 그걸 지키라는 것이다. 사용자가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사업장이 유지된다면 근로계약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사정이 어렵다고 지키지 않고 근로계약을 해지한다면 계약 위반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노동법에서는 부당해고로 판단돼야 하는 것인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제 도입으로 그걸 부정하고서 오히려 노동자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 정리해고 철폐는 이 나라 노동자 모두의 요구여야 하는 것이고, 그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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