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노동위원회 사건을 진행하는 노무사라면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바로 저녁 8시 정각 휴대전화에 울려 퍼지는 문자 메시지의 무게감을. 노동위는 당일 사건 결과를 저녁 8시에 문자로 알려 준다. 그 문자가 누군가에게는 억울함을 달래 주는, 어떤 이에게는 해고의 나락으로부터 다시 희망의 끈을 발견할 수도 있는, 또 어떤 경우는 노동조합의 존폐를 가를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습게도 얼마 전 온 국민이 저녁 8시 정각을 예의주시한 적이 있었다. 바로 대통령선거를 마치고 결과 예측을 알리는 출구조사 발표였다. 누군가는 적폐 청산 가능성을, 누군가는 진보의 희망을 봤을 것이다.

얼마 전 나 역시 들뜬 마음에 술기운을 빌려 저녁 8시 정각 앞에 마주 선 적이 있다. 당시 내 기억으로 그 시각 넘어 전달된 메시지는 “[서울지노위] 서울2017부해549 재단법인 정동극장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은 심판위원회가 근로자들의 구제신청을 인정하는 판정을 했음을 알려 드립니다”였다. 이를 본 순간 흥분은 한동안 지속됐고 정동극장 해고자들과 기쁨을 나누느라 분주했던 기억이 난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정동극장에서 10여년 근무하던 예술단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났다. 극장은 지난해 말 공연을 외주화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존 단원들을 계약기간 만료로 집단해고했다. 당시 단원들은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기에 이르렀고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었다. 사용자와 교섭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이미 근로관계가 종료됐다는 이유로 사용자는 온데간데없고 사측 노무사만 분주했다.

노조와 해고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를 찾았고 다행히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와 정동극장 담당자를 불러내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문체부 관계자는 자기는 지시한 바 없다며 발뺌하기 바빴고, 정동극장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술단원은 마치 소모품과 같아 필요한 작품에 불러다 쓰면 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왜 하루도 빠짐없이 10여년을 불러다 썼을까.

다름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그래도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질의회신을 통해 작품에 출연하는 단원은 한시적 사업에 종사한 것으로 보아 언제까지고 일을 시켜도 정규직 전환의 예외라고 했다. 사용자가 달랑 종이 몇 장 뒤로 납작 엎드린 것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상시적으로 노동력을 사용하면서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놀부 심보와 무엇이 다른가. 노동력을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은 회피하면서도 상시성에서 오는 사용자 책임은 외면하겠다는 심보 말이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품고 발걸음을 서울지노위로 돌렸다. 법률적 판단을 받아 보기로 한 것이다. 정동극장은 노동위에 와서도 예술단원은 근로자가 아니라느니, 한시적 사업에 해당하고 매년 오디션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근로관계 단절이 있었다고 외쳐 댔다. 결과는 노동자 ‘전부 승’이다.

노동부는 바뀌어야 한다. 문제를 풀기보다는 더 꼬아 첨예하게 대립하게 하거나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행정해석을 거둬들여야 한다. 정동극장 역시 더 이상 노동부 회신 뒤에 숨지 말고 앞으로 나와 사용자 책임을 다해야 한다. 예술인도 노동자고 고용이 안정돼야 한다는 점에 한 치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수긍해야 한다. 정동극장에서 이들이 소모품이 아닌 주연으로 출연한 <홍길동전>이 상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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