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욱 변호사 (법무법인 송경)

지난해 12월14일 새벽 경북 경산의 한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를 봉투에 넣어 주지 않는다며 야간 아르바이트 청년노동자를 무참히 흉기로 살해한 사건, 이달 8일 경남 양산의 한 고층아파트 외벽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켠 휴대전화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며 옥상에 올라가 그 노동자의 밧줄을 잘라 살해한 사건, 지난 16일 충북 충주에서 자신의 원룸을 찾아온 인터넷기사에게 당신도 갑질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며 시비를 걸어 흉기로 살해한 사건 등 최근 언론에 보도된 잔인한 살해사건들은 사회적으로 약자 지위에 있는 서비스 노동자들이 3자의 화풀이 대상이 돼 억울하고 허무하게 유명을 달리한 안타깝고 참담한 사례다.

그런데 해당 사건들을 접하는 언론의 태도를 보면 대체로 서비스 노동자와 3자 사이에 발생한 사고로 인식한다. 두 명의 관계에서 사고가 일어난 동기·배경·결과, 피해자의 가족관계, 가해자 구속 여부 등을 분석할 뿐이다.

그러나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이러한 사고들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고였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적폐인 ‘안전불감증’이 만들어 낸 사고들임을 알 수 있다.

경산 편의점 사건에서 아르바이트 청년이 야간에 흉기를 든 손님이 카운터에 나타났을 때 한쪽으로 도망칠 수 있는 ㄷ자 형태의 안전카운터가 있었다면, 양산 밧줄 절단 사건에서 외벽작업 노동자의 밧줄이 칼로 잘리지 않게 튼튼하게 만들어지거나 밧줄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면, 충주 인터넷 설비기사 사건에서 설비기사가 두 명이 1개조로 이뤄 설치를 했다면 그러한 끔찍한 결과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업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안전’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고, 국가는 그러한 기업활동이 ‘최소한’의 안전요건을 충족한다고 보이면, 안전을 ‘인증’한다. 결국 기업과 국가에 의해 가장 낮은 수준의 안전만을 보장받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안전을 지키지 못하면 다치거나 죽는다.

기업과 국가는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의 책임을 가해자에게 돌리고 자신들의 책임은 뒷전이다. 노동자들의 안전은 사고가 발생해도 제자리인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안전하려면 기업과 국가가 전면에 나서 책임지고 노동자들의 일터안전을 개선해야 한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관계된 일터에서의 안전사고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예측할 수 없는,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3자에 의한 무차별 묻지마 폭행·살해 같은 사건·사고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더 이상 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기업과 국가는 위와 같은 참담한 살해사건이 자신들의 탓임을 인정하고, 재발방지책 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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