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비정규노조 조합원들이 16일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 인간선언 2차 소풍’ 행사에서 정규직 전환 바람 등을 담은 편지를 청와대에 전달한 뒤 분수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일자리지만 가장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언제 해고될 지 몰라 항상 불안하고, 네 식구 건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았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강원도 삼척 한국남부발전에서 특수경비로 일하는 김문학(51)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나무 그늘에 앉은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귀를 기울였다. 때로는 손뼉을 치며 김씨를 응원했다.

공공비정규직노조가 지난 16일 서울 청운효자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 인간선언 2차 소풍, 대통령님 점심 같이 먹어요’라는 제목의 행사를 개최했다. 정오를 지나 시작돼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와 5개 원자력발전소, 분당서울대병원 청소·경비 용역노동자가 참석했다.

이들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를 담아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편지를 썼다. 올해 들어 첫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날이었다. 경북 경주 월성원전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은 행사에 함께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출발했다.

“국가중요시설 방호인력이라며 외주화?”

“국가중요시설을 지킨다고 하는데 그런 자부심이 안 들어요. 그렇게 중요한 인력이라면서 왜 외주화합니까?”

편지 쓰기를 마치고 그늘에서 쉬고 있던 김도성(52)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한울원자력발전소에서 특수경비업무를 맡고 있다. 김씨에 따르면 원전 특수경비는 청원경찰과 같은 사업장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지만 처우는 전혀 다르다. 정규직인 청원경찰과 달리 용역업체 소속인지라 2년에 한 번씩 업체가 바뀌고 급여 수준도 낮다. 김씨는 “원전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중요한 업무를 외주 주고 대우도 안 해 주느냐”며 “이러다 보면 결국 외곽경비가 뚫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정비보조업무를 하는 이들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월성원자력 2차 하청업체에서 경정비업무를 하는 이외준(41)씨는 정규직 월급의 절반도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정규직과 비슷한 업무를 하고, 때로는 더 위험한 업무를 하는데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씨는 "방사능 노출량을 측정해 보면 협력업체 직원들이 더 많이 피폭된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14년 근무했는데 250만원을 받고 있다”며 “1년에 한 번씩, 짧게는 10개월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한다”고 귀띔했다. 이씨는 “정비업무처럼 중요한 직종은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며 “급여도 정규직의 80% 정도는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성원자력 용역 청소노동자들의 기본급도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 편지를 쓰는 배주(61)씨에게 노동환경을 묻자 “방사능 노출 위험성이 높은 곳에서 9년째 일하지만 한 번도 원전이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받아 본 적이 없다”며 “정규직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다”고 말했다.

“당사자 의견 반영해야”

정규직화 과정에서 당사자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박용규 노조 경북지부장은 “공공부문별로 정규직화 방안이 나오고 있지만 한국공항공사를 제외하고는 당사자들과 대화 통로가 거의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지부장은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사협의기구를 만들자는 취지로 한수원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월성원전 청소노동자 배주씨도 “정규직화를 하더라도 지금보다 개선된 안이 나와야 한다”며 “당사자 의견을 반영해야 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수원을 포함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41개 공공기관은 지난달 26일 오후 비정규직 관련 대책회의를 열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방침과 관련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기관들은 이날 대책회의에서 정규직 전환을 어느 규모와 방법으로 수용할지를 보고했다.

한편 노조는 이날 손편지 쓰기와 낭독을 마친 다음 손편지를 모아 청와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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