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신문을 읽다 보면 헛웃음이 나는 기사가 눈에 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13일 경찰청과 ‘발달장애인 권익옹호와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는 중앙일보 14일자 동정면 단신기사를 봤을 때도 그랬다.

15년 전 2002년 장애인이동권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단식농성과 서울시의회 기습시위, 서울광장 휠체어 행진 등 여러 차례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들은 서울시를 향해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추락해 숨진 장애인의 죽음 앞에 공개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전동스쿠터 조작 미숙으로 인한 단순 부주의 사고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장애인들의 힘겨운 몸부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였다.

장애인들은 그해 9월11일 오후 2시께 사다리와 쇠사슬로 자신들 몸을 묶은 채 지하철 시청역 선로에 내려와 1시간가량 목숨을 내건 이동권 시위를 했다. 이들 77명은 경찰에 연행됐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였던 장애인들의 극한투쟁은 결국 서울시로부터 2004년까지 지하철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서울시는 그 약속을 쉽게 지키지 않았지만, 장애인들은 끊임없이 싸운 끝에 약속을 현실로 바꿔 냈다.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들어선 건 장애인들의 눈물겨운 싸움의 결과다.

지난겨울 촛불정국이 한창일 때 장애인단체는 광화문역 지하통로에서 3년째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 왔다. 그곳을 지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힘없는 농성 장애인을 협박하는 장면이 자주 SNS에 떠돌았다. 중증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 맨몸으로 한강대교를 건너 노들섬까지 기어가는 극한의 시위 끝에 얻어 낸 게 지하철 엘리베이터다.

이런 아픈 역사를 갖고 태어난 지하철 엘리베이터의 주요 고객은 노인들이다. ‘몇 다시 몇’ 승강장에 내리면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역사 지도를 머리에 꿰뚫고 사는 노인들도 상당수다. 태극기 깃봉으로 광화문 장애인 농성장에 설치된 서명판을 찢고 여성 장애인을 희롱하던 바로 그 노인들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가장 많이 타고 다닌다.

장애인들의 그 험한 싸움을 가장 집요하게 방해한 이들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 경찰이다. 경찰은 중증장애인이 탄 전동휠체어를 흔들기 일쑤였고, 장애인의 사지를 들어 자주 연행했다. 그런 경찰이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다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동아일보는 14일 동정란에 12·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재 전 의원이 별세한 소식을 전했다. 동아일보는 이 전 의원을 민정당 조직국장을 거쳐 85년 총선에서 전국구의원에 당선됐고, 92년 총선에선 무소속으로 당선돼 민자당에 입당했다고만 소개했다. 이 기사 역시 헛웃음을 자아냈다.

이 전 의원은 79년 10·26 이후 육군 준위 신분으로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보도 검열 실무를 관장했고, 이후 보안사령부 언론대책반장을 맡아 언론보도 검열과 ‘정화대상’ 언론인 명단 작성과 언론사 통폐합에 관여했다.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 뒤엔 전역하고 청와대에 들어가 사정비서관을 거쳐 81년 민정당 창당에 참여해 조직국장과 사무차장을 지냈다. 그는 보안사 시절 상관이던 권정달 사무총장과 함께 민정당 실세였다.

이 전 의원의 흑역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도한 언론사는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14일 그의 부고기사 제목을 ‘전두환 정부 시절 언론사 통폐합 관여한 이상재 전 의원’이라고 달았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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