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이 tvN 드라마 <혼술남녀> 팀에 소속돼 근무했던 이한빛 PD 사망사건과 관련해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지난 14일 CJ E&M 대표와 임직원들은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유가족과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고개를 숙였다. 이날 현장에서 김성수 대표이사는 “고인의 사망 이후 미숙한 대응으로 유가족의 아픔을 덜어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진심으로 사죄한다. 환골탈태 심정으로 시스템 개선에 임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을 전했다. 회사는 유가족과 대책위에 전달한 공식 사과문을 통해 이한빛 PD의 사망이 그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며, 제작현장의 불합리를 비롯한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으로서 사건 발생 직후 초창기 조사와 대응 과정부터 함께해 온 민변의 정병욱 변호사는 회사와의 간담회가 끝난 직후 “불과 최근까지도 이 사안이 전향적인 문제해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많은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이 사회적 사건이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 CJ E&M 또한 지난해 10월26일 이한빛 PD 사망 직후 초기 진상규명 과정에서 부적절한 모습을 보이며 유가족과 관계자들에게 ‘거대한 벽’과 같은 모습으로 비쳐졌다.

국면을 바꾼 것은 이한빛 PD가 남긴 메시지에 대한 사회적 지지였다. 당초 이 사안이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지 않겠냐는 초기 대응팀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올해 4월18일 대책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구성되고 이한빛 PD의 유서와 사건조사 보고서가 세상에 알려졌다. 하루 20시간에 달하는 노동과 상호 간에 비인격적인 대우가 일상이 된 현장.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관행일 수 있었겠지만 이한빛 PD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뇌와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그가 남긴 이야기는 방송·미디어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노동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새로운 토대 위에서 진행된 회사와 대책위의 공식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지난달 중순 CJ E&M 방송부문 대표는 유가족 대표와 대책위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지난 시기의 미숙한 대응을 사죄하고 향후에는 전향적인 입장으로 문제해결 논의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실제로 회사는 20여일 이어진 공식 논의 과정에서 현장 종사자들의 목소리와 대책위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고, 6월14일 유가족과 대표이사 면담을 통해 지난 과정이 소기의 결실을 맺었다.

회사는 논의 과정에서 본사 정규인력뿐 아니라 외부업체와 비정규(프리랜서) 노동자의 제작여건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약속했다. 제작 스태프들의 적정 근로시간과 휴식시간, 임금 등에 대한 포괄적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표준근로계약서를 빠른 시일 내에 도입해 현장에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작현장의 다양한 직무에 종사하는 구성원들의 소통과 의견조율을 원활히 하기 위해 스태프협의체 상시 운영을 장려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추후에 개선대책 이행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유가족과 대책위 구성원이 참여하는 자리도 마련하기로 했다. 방송 현장의 노동문제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고, 제작 과정에는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얽혀 있다.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갈 때 의미 있는 개선안이 현장에 스며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난 시기 동안 이한빛 PD 사망사건 해결을 위해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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