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교종 프란치스코의 한국 방문 때 일입니다. 서울공항에 내린 프란치스코 교종은 공항에 영접 나온 50여명의 환영 인사들에게 인사하며 지나가다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 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왼손을 가슴에 얹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 가슴이 몹시 아픕니다.”

이 한마디에 방송을 보던 유가족을 비롯해 우리 모두는 자기도 모르게 울컥하며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공감의 힘이었습니다. 며칠 뒤 서울 광화문광장 행사에서도 수십만명이 모인 광장에 차를 타고 들어가던 교종은, 수많은 인파 가운데서 ‘거짓말처럼’ 멀리 있는 유민이 아빠 앞에 섰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차에서 내려 한국 경호인들의 저지를 뿌리치고 유민이 아빠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팔을 벌려 유민이 아빠의 손을 꼭 잡아 줍니다. 유민이 아빠는 단식하면서 쓴 손편지를 내밀고, 교종은 정중히 받아 자기 주머니에 직접 챙깁니다. 그때 하얀 교종의 법의 가슴께에 ‘반짝’ 하고 노란 세월호 배지가 빛납니다.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를 동원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백남기 농민은 살해당하고,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은 경찰에 쫓겨 할 수 없이 조계사로 피신하게 됩니다. 수천명의 경찰이 조계사를 에워싸고 금방이라도 쳐들어가 끌어낼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재야인사 몇 명이 경찰 저지를 뚫고 조계사 마당까지 들어갔습니다. 한상균은 관음전 4층에 피신해 있었는데, 체포경찰이 겹겹이 막고 있어 직접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백기완 선생님이 격려차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상균이 작은 창으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백 선생님이 나섰습니다. 주변에 있던 우리나 절 안에 있던 경찰 등 수많은 사람들은 긴장했습니다. 과연 백 선생님 입에서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인가에 온통 관심이 가 있었습니다. 조금 뜸을 들이던 백 선생님이 드디어 한마디 하십니다.

“이봐! 한상균 위원장! 여기는 절집이야. 절집은 말이야, 밥 굶는 사람 밥 먹여 주고, 잠잘 곳 없는 사람 재워 주는 곳이야! 아무 염려 말고, 편안하게 있어! 알았지!”

우리는 피식 웃었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얘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겉으로 보면 고달픈 신세에 대한 위로였습니다. 한상균도 편안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말꼬리에 시퍼런 날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백 선생님의 말 속에는 ‘조계사는 한상균 위원장을 내보내서는 안 되고, 한 위원장도 나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한상균은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조금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눈치챈 백 선생님께서 한마디 보태셨습니다.

“야! 한 위원장! 혹시 조계사에서 쌀 떨어졌다면, 나한테 연락하라 해. 내가 보내 줄게!”

한상균을 비롯한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은 그야말로 ‘빵’ 터졌습니다. 백전노장 백기완 선생님의 씹을수록 따뜻하면서도 따끔한 한마디였습니다.

지난 10일은 6월 항쟁 3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정부 행사로 서울광장에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그동안 성공회성당에서 따로 열리던 행사가 합쳐지기도 했지만, 대통령까지 참석했으니 오랜만에 하나 되는 느낌이어서 날씨만큼이나 모든 참석자의 표정이 밝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청계피복노조 출신 노동자가 주축인 청우회 회원들도 엄청나게 많이 참석했습니다. 아직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기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지난겨울 내내 촛불을 들어 스스로 만들어 세운 정부이기도 했지만, 며칠 전 현충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에도 감사드립니다. 재봉틀을 돌리며 눈이 침침해지고, 실밥을 뜯으며 손끝이 갈라진 그분들입니다.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고 불렸던 그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이제는 노인이 돼 가난했던 조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분들께 저는 오늘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의 훈장을 달아드립니다.”

진정한 애국자로 자기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 주는 대통령의 그 따뜻한 한마디는 여공으로 살아온 평생의 한을 한꺼번에 풀어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따뜻한 한마디의 힘입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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