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와 한국씨티은행지부가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점포폐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융노조 씨티은행지부>
박진회 씨티은행장이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

“이미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

“경영진은 노동자 600명 해고와 특히 서민에게 피해가 전가될 계획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송병준 금융노조 한국씨티은행지부 위원장)

15일 오전 씨티은행 경영진과 지부가 서울시 중구 더플라자호텔과 국회 정론관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펼친 주장이다. 노사는 은행이 올해 3월 발표한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으로 마찰을 겪고 있다. 차세대 전략은 전국의 영업점 126개 중 101개를 없애는 내용이다.

회사는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비대면 채널 강화를 이유로 내세웠다. 반면 지부는 사측의 계획이 이행될 경우 고용안정과 소매금융을 위축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노동계는 이번 사건이 금융권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의 신호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조조정 없다"지만, 파견노동자 600명 실직 위기=은행은 그동안 “금융거래의 95% 이상이 비대면 채널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영업점 폐쇄 당위성을 설명해 왔다. 박진회 행장은 “현재 은행의 대면 고객이 6% 수준인데 이를 위해 40%에 달하는 인력이 투입돼 있다”고 말했다. 영업점을 줄이면 생길 가용인력을 WM(자산관리)센터와 전화 영업을 하는 고객가치센터·고객집중센터를 키우는 데 활용한다는 얘기다. 은행권 점포수가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대 시중은행의 영업점 수는 4천848곳으로 전년대비 3.56% 감소했다.

하지만 씨티은행과 같이 전체의 80%에 이르는 영업점을 일시에 폐쇄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박 행장은 “인력구조조정이나 한국시장 철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같은 통계에서 5대 시중은행 임직원수는 7만3천302명으로 지난해 1분기 7만8천430명에 비해 6.53%(5천128명) 줄었다. 영업점 폐쇄가 인력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실제 씨티은행의 영업점 폐쇄와 고객가치센터 등으로의 인력 배치가 이뤄질 경우 파견노동자 600여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지부는 대면채널 이용 비율이 5~6%에 불과하다는 사측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씨티은행이 근거로 내세우는 표를 보면 거래 비율은 씨티폰(7%)·ATM(35%)·디지털(52%)로 구성돼 있다.

지부 관계자는 “사측은 영업점 거래가 5%밖에 안 된다고 했지 디지털로 절반밖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기본적으로 영업점의 80%가 폐점하게 되면 ATM 또한 대부분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영업점·ATM 거래율과 5개 중 4개의 영업점이 사라지는 것을 감안하면 33%의 고객이 은행 이용에 불편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지부는 은행이 영업점 폐쇄 계획을 발표하고 고객들에게 알린 4~5월 사이 8천725명의 고객이 계좌를 해지하고, 4천467억원의 예금이 인출됐다고 발표했다.

◇'은행권 초유 사태' 정부·여당 나서나=비대면 채널 강화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은 고액자산가를 위한 WM센터를 확대·운영할 계획이다. 자산관리 상담 등 주요 업무가 대면으로 이뤄진다. 그러면서도 금융환경 변화를 핑계로 일반 소비자들이 찾는 영업점을 없애는 것은 이들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비판이다.

금융노조는 씨티은행의 계획이 이행될 경우 비슷한 일이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우려했다. 허권 노조 위원장은 “씨티은행의 대규모 점포폐쇄는 주주이익 극대화를 앞세워 스스로 은행이길 포기하는 폭거”라며 “이를 방치한다면 국내의 다른 은행들도 너도나도 이윤을 좇아 대규모 점포폐쇄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향후 씨티은행과 같은 사례에 대응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 대응팀을 꾸리고, 올해 산별교섭에서 노사 공동기구 구성, 범정부 대책기구 구성을 요구할 계획이다. 국회 차원의 대응도 예고됐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부분의 점포를 급작스럽게 폐쇄하는 것은 초유의 사태”라며 “은행법 위반 소지를 포함해 면밀하게 살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정재호 의원은 “새 정부의 정책에 역행하는 씨티은행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당과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역할을 하도록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씨티은행은 다음달 7일부터 영업점 폐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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