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천공항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TF가 구성됐다. 미래창조과학부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출연연구기관 비정규직 연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들이 정규직화 검토를 시작했고, 예금보험공사·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계도 정규직 전환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발표만으로도 7만명에 육박하는 이들이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가장 큰 변화는 '비정규직은 당연한 고용형태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체념하던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꿈꾸게 됐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의 구체적인 대책이 되는 순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경총은 "정규직화가 일자리를 축소시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비정규직, 해법을 제안하다' 토론회에서는 "비정규직 제로정책은 계약당사자들이 자유의사로 체결한 계약관계에 정부가 개입해 기존 계약을 무효로 하고 새로운 계약을 강요하는 것"이라거나 "정규직 고임금이 문제"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고용 권한이 기업에 일방적으로 주어져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자유의사로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님을 애써 눈감고 있는 것이며, 정부가 경총에 대해 비판한 바 '사회 양극화와 청년실업의 책임자'인 기업이 반성과 성찰이 없고, 기업을 옹호해 왔던 소위 '전문가'들의 반성도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청년실업자 중에도 정규직 전환 대책에 반발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죽어라고 공부하는데, 어떤 이들은 정부 대책에 힘입어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정규직이 된다고 하니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노력하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권리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정규직 전환으로 '죽어라고 노력하지만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도 변화시킬 수 있다. 비정규직 확산으로 정규직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신규채용이 축소됐다. 그 때문에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지금은 신규취업자 10명 중 4명만이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비정규직 몇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왜곡된 고용구조를 변화시켜서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다.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할 때 담긴 뜻은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적정한 임금을 받을 권리, 함부로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 단결할 권리, 위험하지 않게 일할 권리 등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빼앗긴 권리를 돌려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을 함부로 폄하하고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규직화'를 '고용불안을 없애는 것'으로만 접근하고 다른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인사청문회에서 "획일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입장을 같이하지 않는다"며 비정규직이 필요하다고 했고, "자회사나 무기계약직 정도면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주장에는 "단순업무도 정규직화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깔려 있다. 노동자들의 직무를 분리해 핵심 직무인지, 중요 직무인지에 따라 고용형태와 임금체계를 달리하자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직무에 따라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 등을 활용하자는 이 주장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련된 카스트제도다. 핵심 직무와 중요 직무의 구분도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지만, 한 노동자가 낮은 직무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노동자가 인간답게 노동할 권리를 빼앗아도 된다는 인식이 더 문제다. 숙련이나 직무 복잡성에 따른 임금 차이는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으나 그것이 고용형태를 달리해야 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상시업무는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것이 고용의 원칙인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정책이 아니다. 노동자 고용을 불안하게 만들고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며, 실업의 고통을 확산하는 '비정규직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왜곡된 고용구조 때문에,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월 2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생존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며, 고용불안 때문에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일터에서 차별과 인권침해를 당하는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몇몇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정부 지침이나 정책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비정규직체제'를 바꾸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뭉쳐서 온전한 권리를 위해 싸울 때 가능하다. '최저임금 만원, 비정규직 철폐 공동행동'이 6월 말 사회적 총파업을 준비하고,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