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현 공인노무사(전국철도노동조합 법규국장)

대상판결 : 대전고등법원 2017.5.11 선고 2015나15366 손해배상(기)


1. 철도파업과 직위해제

“직위해제를 산보 가듯이 받아들이는 직원들의 불감증은 우리 조직의 민낯을 보인 것이다.” “신규직원 파업참여 유도자는 채증해서 직위해제하겠다.” 이는 철도공사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철도노조 파업대책회의에서 했던 발언들이다. 철도공사의 직위해제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매번 파업 때뿐만 아니라 조합활동에 대한 보복적 처분으로서의 직위해제를 ‘산책 가듯이’ 남발하곤 했다. 2006년 파업 때 2천574명, 2009년 파업 때 980명을 직위해제했고 2013년 파업에 돌입하자 철도공사 CEO는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8천663명 전원을 직위해제함으로써 철도노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이에 노동조합은 이와 같은 직위해제 남발을 막고자 2006년·2009년·2013년 매 파업 때마다 직위해제된 노조간부 등을 중심으로 철도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2016년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이번에도 철도공사는 252명을 직위해제했고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한 직위해제로 인정돼 동 직위해제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준비 중에 있다).


2. 판결 요지

위 사건에 대해 1심은 “직위해제 처분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더라도 철도공사가 행한 직위해제 처분을 고의·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라고 보기 부족하다”고 봤으나 대상판결은 “법원의 판단을 통해 직무수행능력 부족을 이유로 한 직위해제 처분은 그 사유가 인정되지 않음을 철도공사가 알고 있었거나 중과실로 알지 못한 채 원고들의 파업참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다시 동일한 사유를 들어 행한 것으로 위법한 처분에 해당해 그 효력이 부정됨에 그치지 않고 위법하게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가한 것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고 그 위자료 액수는 30만원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3. 사건의 쟁점

1심 판결과 대상판결 모두 관련 법리로 “직위해제 처분의 특성을 고려해 직위해제 처분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의 판단은 통상의 징계처분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직위해제 처분을 할 만한 사유가 없음에도 오로지 근로자를 몰아내려는 의도하에 고의로 명목상 직위해제 사유를 내세우거나 만들어 직위해제 처분을 한 경우와 같이, 직위해제 처분이 우리의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한 경우에는 그 직위해제 처분은 재량권 범위를 일탈하거나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한 처분으로서 그 효력이 부정됨에 그치지 않고, 위법하게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 돼 그 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대법원 2005.6.26 선고 2006다30730 판결)”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면서도 그 결론을 달리했다.

1심판결은 직위해제가 위법하다 하더라도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직위해제가 고의·과실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으나, 대상판결은 거듭된 법원의 판결을 통해 불법파업에 대한 대응이라 하더라도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직위해제 처분은 위법하다는 점을 경영진이 알고 있었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본 점에 차이가 있다. 1심 판결은 구체적인 설시를 하지 않고 있으나 직위해제는 인사상 불이익처분이기는 하나 사용자의 광범위한 재량권이 인정되는 것이고, 해고 등 징계처분과 달리 직위해제가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를 엄격하게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시 등을 고려해 사용자의 고의·과실까지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상판결은 이 사건 직위해제가 대규모 불법파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철도운송업무를 유지하기 위한 대응조치를 취할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철도공사가 직위해제 사유로 내세운 직무수행능력 부족에 대한 조사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갑작스런 복귀 후 혼란예방을 위한 조치라는 점 역시 복귀 과정에서 철도공사의 대응을 봤을 때 인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파업 중 업무복귀 의사를 밝힌 조합원에 대해 직위해제를 취소한 점에 비춰 ‘파업참가 저지와 복귀 유도’가 그 본질이었음을 증인심문이나 증거 등을 통해 인정했다. 따라서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한다면 대법원 판시와 같이 ‘고의로 명목상의 직위해제를 내세우거나 만들어 직위해제 처분을 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이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준을 벗어난 것이므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본 것은 지극히 대법원 판례법리에 따른 것으로 타당한 것이다. 한편 철도공사는 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직위해제가 불법행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에 한해 인정된다고 주장했고 이 사건 직위해제는 그러한 의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판시 중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의도’는 직위해제의 남용으로서 사용자의 고의·과실이 추정되는 사례를 예시한 것으로 봐야 하고(직위해제는 해고 등 징계처분과 달리 잠정적인 보직의 해제라는 성질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러하다), 이 사건은 파업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명목상의 직위해제 사유를 내세우거나 만든 것으로 불법행위로서 고의·과실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대법원은 해고 등 징계처분이 ‘불이익처분 사유로 삼을 수 없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와 같은 사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도 그것을 이유로 불이익처분에 나아간 경우’에 비로소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한다. 대법원 및 대상판결은 직위해제가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의 판단은 더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직위해제가 본질적으로 사용자의 재량권이 넓게 인정되는 인사처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위해제 처분을 받은 근로자는 어떠한 직무에도 종사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승급·승호·보수지급 등에 있어 불이익한 처우를 받게 되고 나아가 일정한 경우에는 직위해제를 기초로 직권면직 처분을 받을 가능성까지 있으므로 이 역시 불이익 처분에 속한다(다만 모든 직위해제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지만 이와 같은 불이익이 있는 경우를 전제한다). 그러나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 처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이 ‘업무상 장애예방’이라는 점 때문에 당해 근로자의 소명 없이 즉각적인 처분이 가능하므로 직위해제 사유나 필요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매우 엄격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전고지나 소명이 가능한 해고 등 징계의 불법행위 성립보다 직위해제의 불법행위 성립을 더 엄격하게 봐야 한다는 법원의 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또한 대상판결은 위법한 직위해제 처분의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을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30만원으로 했는데 이 역시 그 필요성을 달성하기에는 철도공사가 거대한 공공기관이고, 직위해제 당사자 규모, 반복된 횟수, 직위해제로 인해 노동조합의 단결권·단체행동권이 침해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적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직위해제는 업무수행이 부적절한 근로자가 계속 근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장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서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파업은 근로제공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므로 근로제공에 따른 업무상 장애가 발생할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철도공사는 파업참가를 저지할 목적으로 이를 남용해 왔고 법원이 이러한 직위해제의 위법함을 넘어 불법행위로 인정했다는데 대상판결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