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단선으로 치러진 적이 없었던 화학노련 임원선거 역사가 김동명(50·사진) 위원장의 등장으로 깨졌다. 2011년 세 명의 후보가 출마했던 19대 임원선거에서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당선된 김 위원장은 20대와 21대에서 단일후보로 나서 대의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14년 치러진 선거에서는 투표 대의원 284명 중 283명이 찬성해 '공산당 선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들었다. 올해 4월11일 치러진 21대 임원선거에서도 98.3%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아재개그'를 사랑하는 친근한 모습과 노동운동만큼은 원칙을 앞세우며 뚝심 있게 투쟁하는 모습이 현장의 신뢰를 얻었던 게 아닐까.

일각에서 "융통성 없이 투쟁만 외치는 게 아니냐"거나 "너무 꼿꼿하면 왕따가 된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그는 원칙을 훼손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강한 목소리를 낸 게 아니라 노동자로서 당연한 목소리를 낸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만날 투쟁만 외칠 것 같았던 그가 요즘 달라졌다. 정권이 바뀌면서다. 한국노총과 정책연대협약을 맺고 직접 '노동존중'을 얘기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노동에 대해 진심을 가진 세력이 집권했으니 노동자들도 인내할 건 인내하고 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울 건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정부가) 약속한 것들이 조금 늦어진다거나 약간의 정책적 이견이 생기더라도 노동계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등을 돌리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높은 지지율로 3선에 성공했는데.

"표결에 참석한 사람 찬성률로만 따지면 그렇게 보이는데, 대의원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은 좀 민망하다. 선거 과정에서 저에 대한 비판이 어느 때보다 많았다."

- 대체로 어떤 비판이었나.

"지난 한국노총 임원선거 때 급박한 단일화 과정에서 조직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냐는 지적을 받았다(그는 한국노총 26대 임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과 이인상 공공연맹 위원장·김문호 전 금융노조 위원장 간 막판 단일화를 중재해 성사시켰다).

또 조직을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노동자 고용이나 권리가 위협받을 때 투쟁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융통성 없이 투쟁의 외길로만 가는 게 아니냐' 혹은 '투쟁도 좋고 선명성도 좋지만 한국노총 내에서 화학노련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들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나오는 의견이기 때문에 귀담아듣고 고칠 점이 있으면 고치려 한다."

- 박근혜 정부에서는 비타협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지 않았나.

"박근혜 정권은 노동을 완전히 소외시켰다. 정부가 추진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란 게 결국 노동시장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노동자들 때문에 약한 노동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부가 그 주장을 하려면 보다 근본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차이와 차별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선행하면서 노동자들을 설득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설득 대신 노동자를 탄압하고 공격 대상으로만 삼았다. 비타협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 권리 얘기하는 대통령, 사회인식 개선에 큰 역할"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됐다. 어떻게 보나.

"대통령이 노동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으며, 그 입장을 어떻게 보여 주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불법파업 엄단' 이런 얘기만 했는데, 노동자 권리를 얘기하는 대통령이 나왔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그런 대통령의 모습이 사회적으로 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대통령이 노동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고 얘기한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법·제도화하거나 현장에서 노동자 권리보장으로 구현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한국노총은 조합원 총투표로 문재인 대통령과 정책연대협약을 맺었다.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한국노총과 깊은 협조관계 속에서 정책연대협약을 충실히 이행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약속한 것들이 조금 늦어진다거나 약간의 정책적 이견이 생길 수 있다. 그렇더라도 노동계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등을 돌리진 않았으면 한다. 노동에 대해 진심을 가진 세력이 집권했으니 노동자들도 인내할 건 인내하고 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울 건 도와야 한다고 본다. 물론 맹목적으로 좋아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정권과 적절한 긴장관계는 유지해야 하지만 냉·온탕을 오가지는 말자는 얘기다. 사람관계도 그렇지만 정권과 노동계도 진정성 있는 관계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정책연대협약과는 별개로 조직적인 힘과 역량은 계속 성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정책연대협약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집중하고 있는데.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과 관련해 이러저러한 비판이 있다. 그런데 굉장히 좋은 정책이라고 본다.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순 있지만 정부가 개입해 빨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곳 또한 공공부문이다.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 성공하면 제조업에 긍정적 영향"

-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집중되면서 다른 업종 노동자들이 소외된다는 얘기도 있다. 제조업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

"너무 심각하다. 제조업 현장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만 봤지,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는 걸 본 적이 없다. 제조업 일자리 정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문제에 우선 관심을 갖는 게 제조업에 나쁘지 않다고 본다. 공공부문에서 문제가 잘 풀리면 제조업 현장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겠나."

-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시간단축으로 민간부문에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사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는 회의적이다. 제조업 고용위기는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주 효과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노동시간만 단축하면 일자리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 제조업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근본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용안정과 관련한 논의를 하고, 관련 정책연구를 해야 한다. 양대 노총 제조연대가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제조산업발전특별법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노사정이 제조산업 발전을 논의할 제조산업협의체를 구성하고, 제조업 발전과 고용보호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제조산업발전특별법에 제조업을 망치는 먹튀자본을 규제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 임기 동안 어떤 연맹을 만들고 싶은가.

"소리 없이 강한 연맹을 만들겠다. 요란스럽기보다는 내실 있는 투쟁을 하려고 한다. 연맹이 목소리는 선명하게 내는 데 반해 현장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에는 역부족이라는 반성에 따른 것이다. 탄압받고 있지만 투쟁할 엄두조차 못 내는 조직이 많은데, 연맹이 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려고 한다. 힘들게 싸우는 조직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연맹이 역할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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