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한국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근본 원인부터 제대로 짚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동아일보 6월7일자 오피니언면에 실린 칼럼의 한 부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는 누구를 말할까. 노동계 목소리? 아니면 비정규직 목소리? 아니다. 칼럼은 다음 문장에 “기업을 배제하거나 경영자단체의 입을 막아서도 곤란하다”며 기업과 경영자단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가 기업과 경영자단체 목소리를 안 들어서 이 모양 이 꼴이 됐는가. 재계, 그것도 재벌대기업 목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이 모양이 된 나라가 바로 한국 아니던가.

칼럼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은 대기업의 52.7%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75% 수준으로 건실하다고 평가한다. 일본 대기업은 대체로 하청 중소기업들 적정 이윤을 보장해 주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며 의리를 지키는 상생구조가 정착돼 있단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란다.

칼럼은 그 원인을 “해마다 파업으로 천문학적 임금인상을 주도하는 대기업 강성노조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칼럼은 한국 노동시장 양극화가 “일부 경영자의 탐욕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주요하게는 대기업 강성노조에 그 책임을 돌린다. 대기업 강성노조를 편들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양극화의 주요 원인은 대기업노조가 아니라 대기업 그 자체다.

우리나라도 한때 일본처럼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가 크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의 1987년 서울대 경제학과 석사학위 논문 <한국 중화학공업 노동자에 관한 연구-생산직 노동자의 내부 구성 및 상태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84년 중화학공업의 10~99인 사업장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108.8에 불과했다. 84년 경공업의 10~99인 사업장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500인 이상 사업장 임금은 105.4에 그쳤다.

전병유 교수는 72년부터 84년까지 생산직 노동자의 규모별 임금격차 추이를 통해 “72년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는 상당히 존재하지만 해가 갈수록 임금격차가 점차 줄어들어 총 급여액이나 시간당 임금에서 중공업과 경공업 모두 동질화하는 경향을 보여 준다”고 했다.

80년대 말까지 이런 현상이 계속됐다. 자동차산업에서 완성차와 부품사의 임금·노사관계를 다룬 <자동차부품공업의 노사관계>(김호진·하재룡, 집문당, 아산재단 연구보고서 30집, 1997년)도 “완성차와 부품사의 임금인상은 88~90년까지는 모두 15~20% 이상 높았지만,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사이의 임금격차가 90년대부터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90년대 들어 완성차 대기업이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독립된 중견 부품사를 하청계열화하면서 양극화가 시작됐다. 수직계열화는 자동차산업을 넘어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커지는 요인이 됐다.

87~91년 현대·기아·대우 등 5대 완성차업체 파업으로 인한 조업중단일수를 원인별로 분석하면 87~89년까지는 완성차 파업보다는 부품사 파업으로 인한 조업중단일수가 더 많았다. 80년대 말까지 생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파업은 중소 부품사가 주도했다. 이 때문에 완성차 대기업은 80년대 말 하청사 파업이 완성차로 이어지는 연쇄 피해를 막기 위해 수직계열화에 들어가 통제력을 강화한다. 그 결과 오늘날의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를 낳았다.

언론이라면 이런 거시적 분석은 아니라도 국민 상식과 눈높이 정도는 맞춰야 하는데, 동아일보는 이런 건 일절 무시하고 칼럼 제목부터 '주범은 대기업 강성노조'라고 달았다.

사실 주범은 대기업이고 종범은 대기업 협조주의 노조다. 노동자성을 잃고 제 밥그릇만 챙기는 노조에게 ‘강성노조’라는 이름마저 아깝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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