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하늘에 있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을 거라 생각한다. 무려 48년이 지난 뒤 받은 답장이다.

1969년 12월19일 그는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2만명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 여성입니다. 2만여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그는 근로감독관에게도 편지를 썼다.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는 숨은 희생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청년 전태일은 그가 근로기준법과 함께 불꽃으로 타오르고 난 뒤에도 여러 명의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야 답장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기념사에서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에게도 감사드린다”며 “재봉틀을 돌리며 눈이 침침해지고, 실밥을 뜯으며 손끝이 갈라진 그분들,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으며, 그것이 애국”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대통령은 말했다. “이제는 노인이 돼 가난했던 조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분들께 저는 오늘,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의 훈장을 달아 드립니다."

여공·공순이·시다로 불린 전태일의 누이들은 대통령의 입을 빌려 당당히 노동자의 이름을 찾게 됐다. 그들의 숨은 희생이 빛을 보게 된 순간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호명에도 여전히 노동은 사회 낮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의 표현처럼 이제는 노인이 된 그때 노동자들의 아들딸 대다수는 기간제·파견·특수고용직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여전하며,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위한다는 최저임금은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수백만명에 이른다. 마음의 훈장이 당장의 명예는 될 수 있을지언정, 빵과 장미는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나라다운 나라’는 일할 수 있는 권리(고용)가 보장되는 나라를 넘어 제대로 쉴 수 있는 권리(기본권)가 보장되는 나라가 아닐는지. 하기에 헌법에 근로의 권리와 의무(32조)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행복을 추구할 권리(10조)가 앞서 있는 것이 아닐는지.

하루 10시간 노동과 정확한 건강진단, 수당 50% 인상을 요구한 전태일 열사는 편지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청년 전태일을 향한 대통령의 답장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그 답장의 수취인은 지금 이 땅 노동자들이 될 것이며, 그때 비로소 전태일 열사의 미소는 환한 웃음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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