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요즘 건설현장에서 20대를 찾아보기 힘들죠. 오죽하면 '경로당'이란 말까지 나오겠어요."

건설현장은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가 될 수 있을까. 갈수록 고령화하는 건설현장에 20대 청년들을 유입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8일 오전 서울 광화문1번가 국민인수위원회 마이크 앞에 선 20대 건설노동자들은 "적정임금이 보장되고, 사회 인식이 개선된다면 친구와 지인에게 권하고 싶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노가다라는 사회 인식과 저임금·장시간 노동 탓에 20대가 건설현장에서 일하기를 꺼린다"며 "청년들이 건설기능인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노조 조합원인 40여명의 20대 청년노동자는 노조가 이날 하루 운영한 '청춘버스'에 올라 국민인수위원회·서울시청·국회를 돌며 "건설현장을 양질의 청년일자리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건설현장=노가다' 사회 인식 개선 필요= 노조가 지난달 12~31일 20대 조합원 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불만사항으로 '사회 인식'이라는 답변이 44명(62%)으로 가장 많았다.

2년 전 장인어른 권유로 형틀목수가 된 김호성(26)씨는 "젊은이들이 건설일을 많이 안 하는 이유는 사회 인식이 안 좋기 때문"이라며 "나도 처음에는 '노가다' 하면 무거운 것 들고 나르는 일만 하는 줄 알았다"고 귀띔했다.

얼마 전까지 사무직 노동자였던 박원일(26)씨는 "대졸자들은 '그동안 투자한 돈이 얼만데, 내가 어떻게 노가다를 하냐'는 인식이 강하다"며 "건설현장도 좋은 일자리라는 사회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임금(37명·52.1%)과 외국인력(35명·49.3%)에 대한 불만도 상당했다. 철근공 송형섭(26)씨는 "지금은 하루 20만원씩 남들 버는 만큼 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 분유값이나 일하다 다쳤을 때 병원비를 생각하면 임금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목수 김정남(24)씨는 "대한민국 건설현장인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며 "이렇게 가다가는 전문기술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다 뺏길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질 좋은 청년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했으면 하는 정책이 무엇이냐"는 질문(복수응답)에 청년 건설노동자 48명(66.7%)이 "저임금 타파"를 꼽았다. 이어 노동시간단축(43명·59.7%)·불법하도급 근절(37명·51.4%)·사회 인식 개선(37명·51.4%)·노동안전 확보(37명·51.4%)라는 답변이 뒤를 따랐다.

◇"적정임금제 도입해야"=노조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질 좋은 청년일자리 확대방안으로 △적정임금제 도입 △8시간 노동정착 △직접고용 △내국인력 고용확대를 제안했다.

적정임금제도는 건설노동자들의 직종별 적정임금을 정부가 지정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30개 주에서 시행 중이다. 국회에도 관련법이 발의돼 있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건설근로자의 직종·기능별 적정임금을 고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건설공사를 발주할 때 건설근로자 적정임금을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노조는 "적정임금제 도입으로 10년을 일하든 20년을 일하든 같은 임금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 낼 수 있다면 건설현장에 200만개의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법안 처리를 요구했다.

특히 내국인력 30% 쿼터제가 눈에 띈다. 노조 관계자는 "불법고용 외국인력이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내국인력이 되레 고용차별을 당한다"며 "건설현장마다 단 30%만이라도 내국인을 고용한다면 건설일자리 70만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20대 건설노동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손영기 노동부 지역산업고용정책과 행정사무관은 "청년들이 건설현장에 많이 들어오게 하려면 직업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며 "목수 10년 경력자 급여가 얼마인지를 공개하는 기능등급제 추진을 포함해 사회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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