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일제강점기 잡지 동광 23호(1931년 7월) '여류투사 강주룡 회견기'에 등장하는 사람. "평양 명승 을밀대 옥상에 체공녀(滯空女)가 돌현하였다. 평원 고무직공의 동맹파업이 이래서 더 유명하여젓거니와 작년 노동쟁의의 신전술을 보여준 연돌남(煙突男)과 비하여 좋은 대조를 이루는 에피소드라 할 것이다"로 소개되는 일본 운동가.

체공녀(滯空女)와 함께 등장하는 연돌남(煙突男)은 후지가스방적 가와사키 공장 굴뚝에서 첫 고공농성을 전개한 다나베 기요시(田邊潔).

1931년 5월 을밀대 고공농성을 벌였던 강주룡보다 반년 전인 30년 11월 일본 후지가스방적 가와사키 공장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공장 굴뚝에 올라가 6일 동안 농성을 한 노농당(勞農黨) 활동가. 한·일 양국의 노동운동사를 통틀어 첫 고공농성 신전술을 전개한 사람.

하시모토 테츠야 '연돌남 다나베 기요시 소론'(1997, 가나자와대 경제학대학논집 17권 2호)에 따르면 다나베 기요시는 일본 노동운동 사상 처음으로 고공농성을 한 사람으로 기록돼 있다. 일어판 위키피디아는 81년 NHK종합TV가 방송한 <나는 하늘 아래 연돌남, おれは天下の煙突男>을 소개하고 있다. 소설가 시모무라 코진이 쓴 소설도 있다.

두 사람이 고공농성을 했던 때는 29년 시작된 세계대공황 시기였다. 미국 뉴욕 등에서 주가 폭락으로 증권이 휴지 조각으로 변하고 수많은 은행과 기업이 도산했다. 전 세계적으로 한쪽에는 상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썩어 가는데도 소비가 얼어붙고, 공장에서 쫓겨난 해고자와 실업자가 거리를 가득 메우던 시절이었다. 다급했던 미국은 그 유명한 뉴딜정책을 폈다.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와 자국을 블록경제로 묶어 공황을 벗어나려 했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 같은 파시즘 세력은 침략전쟁으로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의 노동 착취와 농민 수탈을 넘어 만주와 중국 대륙 침략 야욕을 현실화했다.

상품 수출이 막히고 공장들이 줄지어 도산하고 실업자가 급증했다. 농업 공황도 심각해져 지주들의 농민 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일제는 위기탈출을 위해 조선을 가혹하게 수탈하는 것으로 모자라 자본의 새로운 투자처를 찾았다. 31년 만주사변에 이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이 출현했다. 일제는 만주와 중국을 새로운 자본 투자처이자 상품시장으로 만들어 일제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에 이른다. 조선의 병참기지화 정책은 이를 위한 '길 닦기'였다.

일제는 일본 내의 과잉 투자와 과열 경쟁을 막으려고 ‘중요산업통제법’과 ‘공장법’을 실시하면서 적용대상에서 조선을 제외해 버렸다. 이를 통해 조선에 진출한 일본의 악질자본은 더욱 심한 노동 착취와 수탈을 통해 초과이윤을 보전했다.

조선의 노동자들은 형편없이 낮은 임금, 최악의 노동조건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목구멍에 풀칠을 했다. 노동통제 정책이 극악해지고 노동자와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졌다. 전쟁을 공황 탈출수단으로 선택한 일제의 노동탄압은 필수 절차였다.

노동자들이 당시에 최고 수위의 투쟁수단을 선택했던 것은 절박한 정세와 조건에 기초해 있다. 노동운동에서 신전술을 구사했던 강주룡과 다나베 기요시는 삶과 운동의 역정을 마무리하는 과정도 비극적으로 유사하다.

강주룡은 일제에 맞선 비타협적 투쟁으로 병을 얻어 변변한 치료도 못 받고 빈민굴에서 32세로 생을 마감했다. 다나베 기요시도 굴뚝농성 투쟁 2년 후인 33년 2월14일 요코하마시 나카구 야마시타공원 수로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일제 어용언론은 사고사로 보도했다. 하지만 공산당 기관지 <적기> 122호는 다나베 기요시가 33년 1월 이세자키 경찰서에 체포된 후 고문을 받고 ‘학살됐다’고 보도했다. 일어판 위키피디아도 사인을 ‘학살’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31세였다. 두 사람 모두 고공농성 1~2년 뒤 비극적으로 요절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최악의 자본과 권력을 향해 전개되던 고공농성이 자본주의 한국에서는 왜 오늘도 전개되고 있는가. 헌법에 노동 3권이 보장돼 있고 노동관계법과 각종 절차를 보장하는 기관들이 전국에 널려 있는데 말이다.

현실에서 노동권 보장이 얼마나 허접하면 80년이 훨씬 지난 극한적 투쟁전술을 쓰며 자신들의 절박한 투쟁을 환기하고 호소하겠는가 말이다. 법과 제도의 권리구제 수단, 수많은 공무원과 대리인들이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한국의 노동권이 법적으로 사문화돼 있다는 방증이다.

새 정부는 적폐청산 대개혁은커녕 소개혁 성과라도 남기려면 노동개혁 문제를 등한시하지 말기 바란다. 지난 시기 변함없었던 노동혐오 사회를 노동존중 사회로 바꾸는 첩경은 노동현실에 대한 위정자들의 깊은 성찰과 반성이다. 일제 강점기 사람들을 기록하며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적폐 법·제도·관행이 전면적으로 개정되기를 촉구한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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