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기존 정부와 비교해 노동정책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통령의 첫 업무지시는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정책의 초점이 일자리 확충에 집중되는 모양이다. 추가경정예산도 일자리 사업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축소와 노동시간단축, 그리고 성과연봉제 폐지 같은 노동조건 개선정책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 정책과 노동조건 개선정책을 보면 새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윤곽이 잡힌다. 일자리 양을 늘리는 방향은 옳은데, 여기에 뒤따라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유연성과 안정성이다.

유연성은 조직이나 제도가 유지되는 데 가장 필요한 원리다. 컴퓨터 기술로 촉발한 3차 산업혁명 이후부터 유연성은 조직이나 제도가 생존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원리가 됐다.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는 4차 산업혁명처럼 기술발전이 빠르게 진행되는 환경에서 조직에게 더 많은 유연성을 요구할 것이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이 일자리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도 유연성 문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제사정이 나빠졌을 때 고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졌을 때를 대비하지 못하고 일자리 양만 늘린다면 그런 조직은 오래 생존하기 어렵다. 노동자 총고용을 보장하면서 기업이 경영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 정책이 필요하다.

보수정권은 지난 9년간 유연성 정책에서 실패했다. 유연성 정책을 시장원리로 접근하면서 자본과 동맹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가 상시적으로 가능한 제도를 도입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었으나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고용정책에 이어 임금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성과연봉제의 경우 유연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결국 보수정권은 시장에서 자본이 요구하는 유연성 정책을 시도하다 실패를 초래했다. 2015년 9월15일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9·15 대타협)을 이끌어 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9·15 대타협은 내용 면에서 수량적 유연성에 초점이 맞춰져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사정이 참여함으로써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지만 실행 과정에서 노동계를 배제했다. 당시 사회적 대타협에 참여했던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1인 시위까지 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시에 벌인 총파업 투쟁으로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현재 춘천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보수정권은 9년 동안 노동을 배제한 채 자본과 결탁해 기업을 위한 유연성 확충에만 주력했다.

필자는 유연성과 안정성이 노동정책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본다. 서구 유럽 국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유연안정성(flexicurity) 정책을 노사정 수준에서 논의해 시행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참고할 만한 유연안정성 사례는 독일의 노동시간계좌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생산량 변동에 따라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정책은 국내에서도 일반화된 개념이지만, 실제 적용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하지만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명확히 해야 하는 시점인 만큼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구 사례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도 서구처럼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노동정책 아이디어가 다양한 수준에서 발굴돼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 수준에서 노동시간계좌제 같은 혁신적인 정책이 나와야 하고 국가 수준에서 노사정 대타협안이 나와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노사관계 제도의 ‘혁신기’를 맞고 있다. 제도가 혁신되는 시기에는 강력한 행위주체자 간의 동맹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정권에서 배제됐던 노동계가 비판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탈피해 새 정부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을 창조하는 혁신 주체로 나서 주길 기대한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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