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촛불시민혁명의 성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적폐 청산이 시작됐습니다. 촛불의 명령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국민의 환영하는 반응도 뜨겁습니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구나” 하며 오랜만에 국민 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통령 권한이나 행정력으로 즉각 시정조치를 단행하는 사안들이 특히 신이 납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폐기와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당하신 두 분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입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으며 우리는 크게 시원한 숨을 내쉬며 “이제야 상식이 통하는 사회, 합리성이 인정받는 사회가 됐구나”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즉각 시정해야 할 조치 중 아직 미적거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전교조 법외노조 행정처분 철회입니다. 그렇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즉 노동기본권에 해당하는 단결권을, 박근혜 정권이 고용노동부의 행정처분으로 전교조를 법 밖으로 내쫓아 노골적으로 짓밟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노동기본권을 원천봉쇄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직권남용이요, 국가권력을 빙자한 횡포입니다. 바로 대표적 노동적폐입니다.

전교조에 대해 박근혜 정권이 법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6만여 조합원 가운데 해고 조합원이 아홉 명 포함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합원들은 전교조 간부로서 전교조의 조직적 결정에 따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거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부당한 교육정책을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앞장섰다가 당국의 부당한 탄압으로 해고됐습니다.

전교조의 자주적 노동조합으로서의 자기 규약에 따르면 당연히 이런 조합원에 대해서는 조합원 자격 유지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가지 피해를 노동조합이 책임지게 돼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노동조합 운영의 일반적 원칙으로 모든 다른 노동조합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유독 전교조만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그걸 빌미로 노동조합 자체를 불법화하는 반헌법적 폭거를 저지른 것이지요.

사실 1998년 법제화돼 2000년부터 시행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은 탄생부터 우여곡절이 많았고 결함도 많았습니다. 교원노조법은 89년 법이 마련되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 참교육을 실현해 보려는 열망을 가진 많은 교사들의 자주적 단결이 중심이었지만, 김대중 정권 초기 외환위기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 중 하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요구로 만들어진 측면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주적 노동운동에 적대적이거나 우려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 정치인들이 호락호락 제대로 만들어 줄 리가 없었지요. 그래서 노동 3권 중 단체행동권(파업권)은 아예 유보되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마저 많은 부분이 제약당하는 절름발이 교원노조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노동 3권이 아니라 노동 1.5권이라고 스스로 낮춰 불렀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노동조합 설립과 운용에 관한 법은 우리나라 같은 성문법 국가에서는 큰 원칙만 규정하면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헌법 33조에서의 규정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머지는 노사 간의 성실한 교섭을 통해 합의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법원이 판례에서 사규를 비롯한 여러 가지 규정 등의 조문보다는 노사합의 내용을 더 중히 여기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해고조합원의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법의 취지는 다수의 해고 조합원에 의해 현장 조합원의 의사가 침해당하고, 노조 운영이 해고조합원에 의해 왜곡되는 것에 대한 염려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이번 전교조 사례를 보면 조합원 6만명 중 9명이 교육부나 고용노동부의 우려대로 전교조를 함부로 할 수도 없거니와, 전교조와의 교섭을 통해 얼마든지 적정한 합의를 할 수 있음에도 빈대 잡기 위해 초가집 전체를 태우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박근혜 정권은 처음부터 전교조라는 초가집을 태워 버리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집요하게 추진해 왔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난 것입니다.

촛불혁명의 정신은 잘못된 옛것을 버리고 과감하게 근본과 기준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입니다. ‘전교조 노조 아님’ 행정처분을 즉각 철회하는 것이 적폐 청산의 첫걸음입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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