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뒤 첫 현장방문지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택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만난 뒤로 공기가 달라졌다.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도 방식은 다르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겠다고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일자리위원회는 8월 중 직접고용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우리 사회 고용 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다. 고용불안에 노조를 결성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고용이 안정되면 노동자들의 노동권 확보에도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제대로 된 정규직화 논의, 노조 참여가 관건
문현군 한국노총 부위원장(미조직비정규사업단장)

▲ 문현군 한국노총 부위원장(미조직비정규사업단장)

정규직 개념이 다양하고 기관과 업무에 따라 처해 있는 문제들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는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노총 '노동희망! 공공비정규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위한 TF팀'은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각 공공기관의 구체적인 비정규직 현황과 실태를 파악해 업종·직종·직무별로 정규직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동안 자치단체나 지방공기업 등에서 자회사를 설립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질 좋은 일자리로의 정규직 전환에는 실패했다. 예컨대 서울시가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던 120다산콜센터가 120다산콜재단으로 전환해 상담사들을 직접고용하고, 서울메트로가 서울메트로환경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했지만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임금이나 처우에 대한 불만이 계속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이 별도 직제를 만들어 직접고용을 하든,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든,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든 노동조합이 정규직 전환 논의에 직접 참여해 노동기본권과 임금·정년·처우 등을 세세하게 논의해야 한다. 또 기획재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정원과 총인건비 통제를 풀어야 제대로 된 정규직화 논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유령 취급받는 기술서비스 노동자, 처우개선 계기 되길
이해조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장

▲ 이해조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장

우리는 동네를 배회하는 유령이었다. 기술서비스 기사라 불리며 근무복을 입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봇대를 오르거나 옥상을 넘나들고 건물 외벽을 타며 설치·AS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령이었다. 우리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1년 단위로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는 외주업체 소속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그동안 원청과 외주업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겨 아무도 고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업체가 교체될 때마다 고용불안이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근속과 경력 불인정으로 노동조건 저하와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고자 노동조합을 만들어 치열하게 투쟁했고, 그 결과 자회사를 통한 직접고용을 수용하게 됐다. 사실 SK브로드밴드로 직접고용되는 것이 더 나은 고용의 질 개선 방안이지만 단계적 접근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주체적으로 제대로 된 직접고용을 할 수 있다는 당당함이 반영된 결과다.

이제는 제대로 된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제대로 된 직접고용은 자회사 설립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원청 정규직과 차별이 존재한다면 “말로만 정규직”일 뿐이다. 설립 시점부터 노동조건이 개선돼야 한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이 사회에 만연한 비정규직 적폐를 해소하고 더 나은 직장·사회·미래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진전된 결정을 한 SK브로드밴드의 자회사 직접고용을 다시 한 번 환영하며 노사 대화를 통해 제대로 된 직접고용을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노동조건 결정하는 사용자와 직접교섭 필요
라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 라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하나의 올바른 정규직화'가 존재한다는 관념은 옳지 않다.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정, 노조할 권리의 파괴, 기업의 무책임,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 안전하지 못한 노동환경 등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고 불균일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확산돼 왔다. 정년보장이라는 단 하나의 요소로 풀 수 있는 성질이 아니게 됐다.

그래서 지회는 정규직화를 우리의 유일한 최종 목표로 삼지 않고 있다. 정규직 전환에만 목을 맬 경우 원청과의 교섭권, 사용자로서의 원청 책임확장, 위험의 외주화 저지 같은 비정규직 운동의 다양한 쟁점들이 희석될 수 있다. 우리의 투쟁이 활력을 잃을 위험도 있다.

최근 지회는 비정규직 투쟁이 어떤 과정으로 전개돼야 하는지를 두고 몇 가지 방향을 내부적으로 정했다. 노동자가 스스로의 노동조건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고,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확장하면서, 노동자 간 분할과 차별을 철폐해 나가는 과정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고민을 모았다.

이런 기조에 따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삼성의 공급사슬에 포함된 모든 노동자의 사용자인 이 부회장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진짜 사용자라고 봤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고,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정점에 있는 이 부회장과 교섭을 통해 고용과 임금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 같은 우리의 투쟁은 허황되지 않다. 지회가 성공할 경우 그 낙수효과는 우리나라 전반에 미칠 것이다.


자회사 정규직은 또 하나의 비정규직
서재유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

▲ 서재유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

코레일네트웍스는 2004년 철도공사에서 분리된 자회사다. 코레일의 역무·여객 매표·주차사업·콜센터·KTX특송·광명역-사당역 셔틀버스 운행 등 일부 업무를 코레일에서 수탁받아 수행한다.

자회사 정규직화가 얼마나 허울만 좋은 방안인지,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코레일네트웍스 사례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회사는 2014년에 직제를 개편하면서 본사 직원을 제외한 현장 정규직을 무기계약직화했다. 직무급제를 시행한다면서 현장 직원들의 임금체계를 개편했다. 실제로는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으로만 지급한다. 십수 년 경력이 있어도 신입과 거의 같은 임금을 받는다. 자회사 정규직화는 또 하나의 비정규직인 셈이다.

자회사 노동자가 노동권 자체를 요구할 수 없는 구조다. 하청회사는 원청 눈치만 보고 지시만 따른다. 코레일이 매표창구 축소계획을 세우면 회사는 그대로 따라야 한다. 코레일 방침에 따라 정리해고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자회사 방식은 아예 틀린 선택지다. 자회사 정규직은 괜찮은 곳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매일 체험하고 있다.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코레일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청이 직접 사용자가 돼야만 한다.


지자체, 민간위탁 업무 직영으로 전환하라
주훈 민주연합노조 조직국장

▲ 주훈 민주연합노조 조직국장

1천만 촛불로 끌어내린 박근혜는 18대 대선 후보시절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했다. 그러나 생색내기용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은 늘어만 갔다. 정부 차원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통계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특정업무를 포괄적으로 위탁한 경우’는 비정규직 통계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러니 규모가 제대로 파악될 리 만무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환영한다. 그러나 계획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구체적인 실태파악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왜 비정규직 통계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는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위해 어떤 내용으로 실태파악을 해야 하는지 노동조합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대부분이 간접고용이라는 점이다. 필연적으로 불법·편법이 판칠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간접노무비·일반관리비·이윤까지 보장하는데도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위탁업체는 갖은 방법으로 불법·편법을 저지른다. 죽어나는 이는 노동자다. 지자체는 민간위탁 업무를 모두 직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고용을 보장하고 예산을 줄일 수 있다. 지자체는 직영 전환을 통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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