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이 30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양대 노총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ILO 핵심협약 비준과 한상균 위원장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ITUC) 사무총장을 만났다. 대통령이 국제 노동계 수장을 청와대에 초청해 단독면담을 가진 일은 이례적이다. 29일 입국한 버로우 사무총장이 전교조와 삼성그룹 관련 노동자들을 만나고, 수감돼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는 일정을 소화한 것을 감안하면 청와대 만남에서 문 대통령이 노동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입장을 전했을 공산이 높아 보인다.

문 대통령, 국제노총 사무총장 청와대서 만나

30일 노동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버로우 총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배석자 없이 한 시간가량 단독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한국 노동현안과 개선 과제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날 면담에서 버로우 총장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중 87호·98호 비준을 문 대통령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협약에 따르면 모든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행정당국은 이를 제한할 수 없다.

ILO에 따르면 189개 협약 중 우리 정부가 비준한 협약은 29개에 불과하다. ILO가 선정한 핵심협약 8개 가운데에 4개만 비준했다. 비준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이다.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은 해직자·5급 이상 공무원·소방관의 노조가입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두 협약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셈이다. 이 협약이 비준되고, 우리 정부가 이행을 했더라면 전교조·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법외노조 문제를 풀 실마리가 마련되는 셈이다.

"노동기본권 보장 공약 이행의지 확인한 자리"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집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해 노동존중 사회를 열겠다"며 미비준 핵심협약 4개의 비준을 약속했다. 국제협약비준에 맞춰 국내 노동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버로우 총장과 단독면담을 한 것은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각종 관련법 개정에 정부가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행위로 해석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국내법을 개정해야 비준이 가능하다"며 "국회 여야를 설득해야 법 개정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정부가 세밀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버로우 총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재벌개혁을 두고도 의견을 교환했다. 버로우 총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한상균 위원장을 석방하고, 수배 중인 노조간부에 대한 합당한 조치를 취해줄 것도 제안했다.

버로우 총장은 이날 면담에 앞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수준이 되도록 한국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기를 기대한다"며 "삼성에 속해 일하는 전 세계 1천800만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국에서부터 재벌개혁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와 시민의 편에 서서 앞장섰다는 이유로 노조 지도자가 구속되는 일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건"이라며 "한국 정부는 한상균 위원장을 반드시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버로우 총장은 이날 오전 춘천시 춘천교도소를 찾아 한 위원장을 면회했다.

문 대통령과 버로우 총장의 면담은 국제노총·양대 노총의 요구를 청와대가 수용해 이뤄졌다. 버로우 총장이 우리나라 대통령과 면담을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해 국제노총 관계자·양대 노총 위원장과 함께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다.

한편 제조통합국제노련은 지난 29일 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 위원장 석방과 ILO 핵심협약 비준, 노조활동으로 발생한 손해배상·가압류 철회를 촉구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