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의 칼럼니스트 겸 작가

먼저 당신에게 서울은 어떤 곳인지 묻고 싶다. 대체로 한국 사람이 느끼는 서울은 파리나 런던·뉴욕 같은 멋진 대도시에 비하면 고작해야 24시간 편의점이 어디에나 있고(‘애들이 밤에 술 더 먹고 싶을 때 진짜 좋은 정도’) 비교적 안전하고 인터넷이 빠른 게 최대 자랑인 삭막하고 건조한 도시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와 달리 외국인들이 말하는 서울은 우리와 한참 달라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무려 21개국을 여행한 후 서울이 좋아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3년째 살고 있다는 모델 겸 스타일리스트 채드에게 서울은 끊임없이 변화가 진행되는 ‘익사이팅’하고 ‘어메이징’한 도시다.

KBS에서 일하며 한국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리처드에게 ‘서울은 언제나 깨어 있는 도시’이고 스웨덴에서 온 뮤지션 라세 린드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특유의 심장박동 같은 비트감’을 얘기한다. 솔직히 놀라운 얘기 아닌가? 서울이 그렇게 매력적인 도시라는 사실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서울’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 ‘서울’이 아니라 ‘서울시 공무원’들이 싫었다. ‘서울의 진짜 보석’을 그 특유의 아둔한 지성과 후진국스러운 안목으로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설상가상으로 마구 파괴하고 해체하는 이들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럽던지….

때마침 종로의 피맛골이 철거될 즈음이었다. 서로의 어깨가 스칠 듯 말 듯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디좁은 골목, 그 냄새만으로 입에 침이 고이고 마음이 이상하게 푸근해지는 맛의 작은 제국들. 심지어 위생에 대한 불안함마저 잊게 만드는 특유의 매캐한 연기 속에서 피어나는 그 마술적인 분위기. 외국인 여행자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을 사랑했던가? 그곳은 서울의 600년 역사가 담긴 살아 있는 서민 문화 박물관이었다.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곳. 가난한 서민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역동적으로 살면서 만든 곳이기에 그저 돈만으로는 결코 흉내 내서 만들 수도 다른 무언가로 환원할 수도 없는 공간. 그런 엄청난 문화적 보석을 개발이라는 무식한 경제논리를 앞세워 불도저로 밀어 버린 도시가 바로 서울이기도 했다.

그 이후 결코 피맛골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재개발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 답답한 도시가 싫어서 서울을 떠났다. 피맛골을 영혼 없는 초고층 빌딩과 맞바꾼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급기야 대통령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서울을 떠났다. 비록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MB정부의 ‘4대강 삽질’ 소리에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자연 속에 있으면 금방 노여움이 풀렸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이후 간혹 생각했다. ‘서울시민’으로 사는 공적인 행복에 대해서. 서울시청 도서관이 생겼을 때도 그랬고 서울 갈 때마다 이용하게 되는 지하철역이 마치 1920년대 파리 아케이드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그랬다. 물론 불의에 맞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퇴근 후 광화문광장으로 속속 모여드는 모습을 지켜볼 때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처럼 강렬한 질투심이 든 적은 없다.

라디오에 나온 박원순 시장에게 서울역 고가 보행길 ‘서울로 7017’ 개장 소식을 들었다. 낡았다고 해서 그냥 헐거나 파괴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재생하겠다는 취지가 일단 멋지게 들렸고, “지금까지는 자동차가 도시를 지배했다면 이젠 좀 시민이 걸어 다니고 숨 쉬고 느끼는 도시여야 좋지 않겠냐”는 시장의 소신 발언도 너무 근사하게 들렸다. 그래, 가 보자. 소풍 가는 기분으로. 마치 외국인 여행자인 것처럼 이방인 몸으로 서울 여행을 해 보자. 서울로 7017과 함께 나의 두 발바닥을 이용해서 서울이라는 매력적인 대도시의 구석구석을 새롭게 느껴 보고 싶다. 다행히 걷기 좋은 계절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칼럼니스트 겸 작가 (@kimkyung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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