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부터 국회 청소노동자 203명이 용역업체에서 소속에서 국회 사무처 소속으로 전환됐다. 올해 1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기념 신년행사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새로 받은 신분증을 받고 기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 이후 정규직화 논의가 한껏 일고 있지만 ‘어떤’ 정규직을 만들지를 두고는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새 정부 눈치를 보느라 당장 발등에 불이 붙은 공공기관도, 민간기업도 실태조사에 착수하긴 했지만 우왕좌왕하긴 마찬가지다. 당사자인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에도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있다.

직렬을 신설해 무기계약직 형태로 직접고용하거나,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다음달 말 공공부문 일자리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매일노동뉴스>가 국회·자치단체·공공기관·지방공기업에서 직접고용으로 전환됐거나 자회사(재단) 정규직으로 전환돼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노동자들은 "중간착취가 사라지고 고용이 안정됐다"고 평가하면서도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 정규직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지만 처우는 비정규직이던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처우개선 없이 고용안정만?

지난해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서울시는 생명·안전과 직결된 업무의 단계적 직영화를 추진했다. 사망한 김군과 함께 은성PSD 소속으로 1~4호선 스크린도어 수리업무를 하던 박창수(28)씨는 두 달간의 촉탁직을 거쳐 지난해 9월 서울메트로 무기계약직으로 직접고용됐다. 서울메트로는 박씨 같은 무기계약직을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안전업무직’ 직군으로 관리한다.

박씨는 “이제는 현장에 나갈 때 2인1조 수칙을 지켜 작업하고 있다”며 “1시간 이내 조치해야 한다는 지침은 없어졌다”고 안전업무직 전환 뒤 변화된 상황을 설명했다.

처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박씨는 “급여가 조금 오르긴 했지만 처음 서울시가 발표한 것에는 한참 못 미친다”며 “정규직 수준으로 고용하고 연봉도 3천200만원 수준으로 설계한다던 서울시의 발표와 현실은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테이블이 다르고 권한 차이도 있다”며 “무기계약직이다 보니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정규직도 있어서 현장에서 마찰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근무형태도 정규직과 다르다. 정규직은 4조2교대를 시범실시하고 있지만 안전업무직은 3조2교대로 근무한다.

“직접고용되고 바뀐 거요? 글쎄요.” 고덕차량기지에서 중정비업무를 하는 황선락(46)씨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서울도시철도 자회사인 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 소속에서 지난해 9월 원청 소속으로 바뀌었다. 그 역시 ‘안전업무직’이다.

황씨는 “그전이랑 하는 일도 똑같고 처우도 비슷하다”며 “직책도 없고 승진체계도 없고 개선되지 않은 급여수준에 실망해 직접고용 이후 퇴사한 직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규직인 일반직과 안전업무직으로 이름부터 분리돼 있고 모든 것에 차별이 있다”며 “처우개선을 해 준다고 얘기는 나오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자회사 정규직=원청 비정규직”

서울시가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던 120다산콜센터가 이달 1일 120다산콜재단으로 전환됐다. 센터에서 일하던 상담사 410명이 정규직으로 고용승계됐다. 심명숙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장은 “명찰만 바뀌었다”고 잘라 말했다. 심 지부장은 “7월 말까지 3개월간은 위탁업체에서 하던 대로 운영하기로 했다”며 “기존 불합리한 평가제도도 그대로고 처우가 개선된 것도 하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개선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앞으로 임금이 어떻게 될지도 몰라 직원들 모두 불안한 상태”라며 “비정규직의 가장 큰 문제는 저임금인데 고용만 보장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KTX 승무원들은 도급회사 기간제 신분에서 자회사 기간제로, 다시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다. 전문희 철도노조 코레일관광개발지부장은 “형식상 자회사 정규직이지만 원청인 코레일의 비정규직인 셈”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다 해고돼 11년 넘게 투쟁하고 있는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KTX 관광개발 사례를 보면 자회사 정규직화가 허울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고용불안 문제만 해소됐을 뿐 권한 없는 자회사에서 10년·20년을 일해도 똑같은 임금을 받고 처우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청소용역업체 횡포 사라져”

“용역회사에 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 현실이 됐어요. 아직도 꿈인가 생시인가 해요.” 올해 1월 국회 사무처에 직접고용된 김영숙 국회환경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직접고용으로 전환된 이후 최고 장점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꼽았다. 그는 “용역업체의 횡포가 심했다. 툭하면 자른다고 말해 고용불안이 심했다”며 “작업복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부당한 처사에도 항의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국회 사무처가 기준과 원칙을 갖고 공정하게 대우해 준다”며 “힘든 구역은 인력이 충원됐고 필요한 청소 용품도 그때그때 채워 준다”고 했다.

광주시청 청소노동자들도 2년간의 직접고용 기간제를 거쳐 올해 2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매순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광주시청지회장은 “일하는 곳에서 인정받아 당당하게 일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그동안 일하다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았는데 고통이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시장이 직접고용을 추진할 때 주변에서 우려가 컸는데 실제 직접고용 이후 예산이 절감된 부분도 있었다”며 “전환 관정에서 시청과 노조 간 대화와 소통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전환 대상에 대한 면밀한 검토 이후 추진해야

전문가들은 전환 이전에 전환 대상 업무의 특성과 전환 유형, 노동자들의 인구학적 특성을 꼼꼼히 살피고 원칙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을 시행할 때 경로의존성과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징적 기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기관들도 비슷하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며 “특정 유형이나 모델을 정하기 보다는 우선 해당 기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업무 특성과 연령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지가 좋더라도 일괄적으로 처리하면 노동자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전환대상의 특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과거 정부가 ‘상시·지속’만을 기준으로 정규직 전환 여부를 판단했다면 지금 정부는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를 큰 원칙으로 정해야 차별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포괄적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애초 상시·지속·안전·생명업무를 정규직으로 사용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며 “지금부터라도 명확한 원칙을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실장은 “적어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는 상층부의 논의뿐만 아니라 당사자들과 소통하고 풀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아직 미흡하다”며 “정부에서 밀어붙이니 공공기관에서는 시늉만 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가 정규직 전환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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